부리에 곤충울 가득 채운 노랑할미새 암컷이 서울 홍제천 시멘트 제방을 따라 둥지로 가고 있다.
봄의 전령인 벚꽃과 살구꽃이 필 무렵, 새들도 꽃을 피우죠. 봄은 대부분의 생물들에게 번식의 계절입니다. 우리나라의 실개천에서 서식하는 여름철새 노랑할미새(Grey Wagtail)도 예외는 아닙니다. 새들이 어떻게 꽃을 피우냐고요?
노랑할미새는 4월에 남녘에서 찾아와 먼저 배우자를 선택합니다. 수컷은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아름다운 목소리로 구애하며, 암컷이 좋아하는 먹이를 잡아 선물 공세를 합니다. 그것도 부족해 암컷 앞에서 자신의 매력을 과시하는 구애의 춤을 추죠. 암컷도 배설강이 부풀고, 수컷을 맞이할 준비가 되면, 수컷을 부르는 구애의 춤을 춘답니다. 우량한 종을 존속시키기 위한 생존 전략이지만, 그 모습이 마치 한 송이 꽃처럼 아름다워요.
배우자를 선택하고 첫사랑을 나누면, 노랑할미새 부부는 바위 틈이나 나무구멍 속에 교대로 둥지를 틀고 본격적인 사랑을 나눕니다. 일정한 세력권을 유지하며, 그 경계에 다른 노랑할미새가 나타나면, 격렬하게 공격해 자신의 세력권 밖으로 쫓아내기도 하지요. 자연생태계에서 자신의 2세를 위해 경쟁하는 노랑할미새의 삶이나 인간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아요. 생명을 이어가는 삶은 그 자체가 경쟁입니다.
사랑의 결실로 5~6개의 알을 건강하게 부화합니다. 어미 새들은 부지런히 실개천을 뒤져, 곤충,수서곤충, 거미를 잡아 어린 자식들을 부양합니다. 20cm 정도의 작은 몸집이 겨우 들락거릴 수 있는 바위 틈이나 나무 뿌리 틈새, 나무 구멍 속 보금자리에서 어린 새들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성장합니다. 간혹 누룩뱀 이나 꽃뱀이 둥지를 급습하지만, 어미는 필사적으로 방어합니다.
약 보름간의 둥지 생활이 끝나면, 어린 노랑할미새들은 둥지를 차례로 뛰쳐나오죠. 긴 꼬리가 아직 형성되지 않았지만 덩치는 어미에 버금갑니다. 사랑스런 자식들 부양에 노랑할미새 부부는 온종일 파김치가 됩니다. 자식들의 안전을 살피랴, 먹이 사냥을 하랴 쉴 틈이 없답니다. 따사로운 봄볕 아래서 자식들과 잠시 휴식도 취해보지만, 여기저기 출몰하는 길냥이들에게 어린 자식들이 종종 희생됩니다. 5~6마리의 새끼가 부화해도 끝내 살아남는 녀석은 2~3마리도 채 되지 않습니다.
노랑할미새 수컷이 홍제천 바위가에서 암컷을 유혹하고 있다.
노랑할미새 새끼들은 어미를 따라 실개천 바위 사이로 쉴 새 없이 움직입니다. 이따금 어미의 경고음이 울리면, 풀섶이나 바위틈으로 잽싸게 피신합니다. 아직 날 수 없지만 빠른 발걸음으로 작은 바위 정도는 팔짝 뛰어갑니다. 처음에는 어미가 잡아다 준 먹이를 먹다가 점차 날개의 힘이 생기면 비행술과 사냥술을 배워 홀로서기를 합니다. 봄이 지나고 여름의 문턱에 서면 짧은 꼬리깃도 커져 어미와 새끼의 구별이 어려울 정도지요.
‘치치칫, 치치칫’ 실개천 길을 따라 긴 꼬리를 아래위로 흔들며 파도처럼 날고, 때로는 총총 걸음으로 빠르게 뛰어다니는 노랑할미새는 할미새과 중에서 깃털이 가장 화려하지요. 배와 허리는 노란색, 머리와 몸 윗면은 푸른 회색을 띠고 다리는 분홍색입니다. 눈 윗쪽으로 흰 눈썹선이 있고, 수컷은 턱이 검은색이지요. 유라시아 대륙의 북중부에서 아프리카까지 분포하는 노랑할미새는 추위를 피해 동남아에서 겨울을 나고 봄철 찾아와 우리나라에서 번식하는 여름철새입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한반도 기후가 온난화 하면서 남부지방에서 아예 겨울을 나는 개체가 늘고 있어요. 이러다 노랑할미새가 텃새로 변할지도 모르겠어요.
전 세계에 분포하는 노랑할미새의 개체수는 아직 안정적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개체수가 점차 줄고 있어요. 그들이 좋아하는 서식지는 곤충이 많은 맑고 깨끗한 실개천인데, 도시는 물론이고 농촌도 실개천이 사라지고 있어요. 자연 제방이 시멘트로 뒤덥히고, 하늘이 막힌 복개천으로 둔갑하니, 노랑할미새가 살아갈 공간이 없는 거지요. 사람을 괴롭히는 모기 유충 등 해충을 퇴치하는 노랑할미새의 역할도 점차 줄어들 것이 명약관화합니다. 작은 실개천의 봄을 알리는 노랑할미새의 지저귐이 해마다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글·사진= 김연수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겸임교수 wildik02@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