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안정훈 기자] 왕좌지재(王佐之材). 왕을 만들 만한 인재라는 뜻이죠.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도 이 단어에 어울리는 활약을 한 인물이 있는데요. 바로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입니다. 미 대선에서 1억3200만달러(약 1840억원)를 기부하는 등 그야말로 열과 성을 다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을 도왔죠. 그 결과 트럼프 정권에서 ‘황태자’로 군림했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약 반 년이 지난 지금,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각종 사안에서 이견을 보이는 일이 많아졌는데요.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토마토Pick이 트럼프 대통령과 멀어지는 머스크를 조명했습니다.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와 테슬라 모델S에 앉아 기자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부효율부 수장 머스크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이후 머스크는 정부효율부의 수장을 맡았습니다. 정식 정부부처는 아니고 미국 디지털청 산하의 임시기구인데요. 정부효율부(DOGE)라는 이름이 도지코인의 ‘도지(DOGE)’와 겹치는 점에서 머스크를 위한 기구라는 게 다분히 드러나죠. 관료주의 해체와 규제 해소 등이 목표인데요.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각 부처 공무원을 대대적으로 해고하면서 상당한 예산 절감 효과를 봤는데요. 하지만 정부효율부가 주도한 이 해고에 대한 반발도 트럼프 행정부에 상당한 타격을 줬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그 외에도 트럼프 정부의 주요 공약인 성소수자 권리 축소, 불법 이민자 강제 추방 등 여러 분야에서 정부효율부가 간접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머스크의 이런 광폭 행보는 트럼프 대통령의 전폭적 지지가 있기에 가능했는데요. 지난해 대선에서 당선된 직후부터 “우리에게 일론이라는 새로운 스타가 탄생했다”며 그가 황태자임을 공공연하게 알렸죠.
머스크-트럼프 이견 ①인선
베센트 재무장관과 충돌
그러나 근 1~2개월 사이 머스크와 트럼프 대통령은 여러 문제에서 이견을 드러냈습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 중 한 명인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과의 갈등이 큰데요. 최근 국세청(IRS) 인사 사태가 대표적입니다. 머스크는 정부효율부를 통해 개리 셰이플리를 지명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베센트 장관은 재무부 산하기관의 인사를 머스크가 주도한 것에 대해 강하게 불만을 제기했죠.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였고, 머스크가 인선한 개리 셰이플리를 해임했습니다. 또 정부효율부가 미국 국가 가계부와 같은 재무부 지불시스템에 접근했던 것을 둘러싸고도 양측이 충돌한 바 있습니다. 대대적인 공무원 해고 때도 두 사람의 시각은 엇갈렸습니다. 머스크와 달리 베센트는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봤죠.
머스크-트럼프 이견 ②관세
미-중 싸움에 테슬라 위기
트럼프 2기 정부가 핵심적으로 내세우는 관세정책에서도 머스크는 트럼프 대통령과 상반된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는 특히 트럼프 정부에서 관세정책을 진두지휘하는 피터 나바로 선임고문을 멍청하다고 비난하기도 했죠. 일각에서는 아예 머스크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관세 철회를 호소했다는 말도 나왔습니다.
머스크의 반발은 특히 중국을 겨냥한 관세정책이 테슬라에 직접적인 타격을 줬기 때문으로 풀이되는데요. 테슬라는 중국 상하이에 공장을 운영 중이며 배터리 셀 등 반도체 부품도 일부 중국에서 조달하고 있습니다. 중국에 대한 관세 인상은 부품 수입 비용을 상승시키고 결국 테슬라의 생산원가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죠. 또 중국 내에서 반미정서가 확산되면 테슬라가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것도 어렵게 만듭니다. 더구나 최근 자신의 적극적인 정치 행보 탓에 미국 내에서 부정적 인식이 커졌고, 그 결과 지난해 12월 480달러에 육박했던 주가는 200달러 넘게 폭락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관세정책으로 미-중갈등이 극에 달하면서 테슬라는 더욱 곤란한 처지에 놓였죠. 쉽게 말해 고래싸움에 새우 등이 터질 것 같으니, 고래를 달래보려 한 셈이죠.
머스크-트럼프 이견 ③중국
“일론, 중국 기밀 접근 안돼”
머스크의 이런 중국과의 ‘불편한 동행’은 트럼프 행정부도 이미 알고 있는 바입니다. 이는 최근 행보에서도 드러나는데요.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머스크에게 제공될 예정이었던 국방부의 중국 관련 기밀 브리핑을 전면 취소시켰습니다. 악시오스는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일론은 거기서 뭘 하고 있는 거야? 그가 가지 않도록 하라”고 명령했다고 전했는데요. 이와 관련해 행정부 관계자는 “대통령은 여전히 일론을 매우 아끼지만, 넘어서는 안 될 선이 몇 가지 있다”며 “일론은 중국에서 많은 사업을 하고 있고, 그곳에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 브리핑은 적절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즉 미-중관계를 의식해 군사업무 관련 브리핑을 차단한 것입니다. 스페이스X가 미 국방부의 위성 발사 계약을 수주하는 등 머스크가 이끄는 기업이 미국 안보체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도 선긋기를 한 셈입니다. 문제는 어느 쪽에도 붙기 어려운 머스크의 입지입니다. 이해충돌의 소지가 다분한 상황이니까요.
진퇴양난 머스크, 선택은?
트럼프 정권 극초반만 해도 머스크의 행보는 그야말로 무소불위라 할 만했습니다. 당연히 그에 따른 반발은 컸고, 그의 권한을 제한해야 한다는 비판도 잇따랐죠. 그 지적은 현실이 되고 있고요. 테슬라의 경영실적도 더 이상 머스크가 정치영역으로의 ‘외도’를 허용하지 않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트럼프에 반대하는 시위에 머스크의 이름도 함께 오르내리는 실정이니까요.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도 전과 같지 않죠. 트럼프 대통령이 과연 임기 말까지 머스크와 함께 갈까요? 머스크에겐 선택지도 많지 않고, 시간적 여유도 그리 넉넉해 보이지 않습니다.
안정훈 기자 ajh7606311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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