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강예슬 기자]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에 이완규 법제처장을 지명하자 이를 막으려는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이 줄을 잇습니다. 헌법소원과 함께 제기된 가처분 신청은 9건에 달합니다. 그런데 헌법소원을 내고 헌법재판소 판단을 기다리는 이들 중엔 25년 전의 형사처벌을 바로잡고자 재심을 진행 중인 노동자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지난 1991년 대우조선 노동조합 파업을 지지하는 성명을 냈다가 징역형을 받고 옥살이를 했습니다. 재심을 맡은 재판부는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헌재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고 헌재에서 계류 중입니다. 그러자 노동자들은 한 권한대행이 지명한 이완규 처장이 헌법재판관에 임명되면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법률에 의한 재판받을 권리'가 침해된다며 가처분 신청까지 낸 겁니다.
16일 <뉴스토마토>는 형사처벌 21년 만에 개시된 재심의 당사자이자 헌재 판단을 기다리는 노동자들로부터 헌법소원을 낸 사연을 구체적으로 들어봤습니다. 이들은 윤명원씨(전 대우정밀노조 위원장), 대우자동차 노동자 출신인 홍영표 전 의원 등입니다.
지난 10일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대심판정에서 4월 심판 선고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씨와 홍씨는 1991년 구 노동쟁의조정법을 위반해 각 징역 1년, 1년6개월을 받고 실형을 살았습니다. 당시 두 사람은 각각 대우정밀노조 위원장, 대우자동차 해고 노동자로 노조 연대단체인 '연대를 위한 대기업노동조합회의(연대회의)'에서 활동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두 사람이 그해 2월 대우조선 노조 파업을 지원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고 성명을 냈고, 구 노동쟁의조정법에서 금하는 '제3자 개입금지' 조항을 위반했다고 판단했습니다. 두 사람이 연대회의 활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체포·구속한 겁니다.
지금은 폐기된 제3자 개입금지 조항에 따르면, 직접 근로관계를 맺고 있는 노동자와 당해 노조 또는 법령에 의해 정당한 권한을 가진 자를 제외하고 다른 노조의 설립·해산, 가입·탈퇴, 관계 당사자 조종·선동·방해 등을 해선 안 됩니다. 윤씨와 홍씨는 대우조선 소속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대우조선 노사의 일에 끼어들었다고 처벌받은 겁니다.
시간이 흘러 2022년 3월. 두 사람은 해당 사건의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서울중앙지법은 그해 6월 재심 청구를 받아들였습니다. 재심 판단의 핵심 쟁점은 제3자 개입을 금지한 구 노동쟁의조정법 조항과 벌칙조항이 표현의 자유 등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를 침해했는지로 좁혀졌습니다. 법원은 이듬해인 2023년 2월 "이 사건(제3자 개입 금지 및 처벌) 법률 조항의 위헌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될 뿐 아니라 위헌이라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면서 직권으로 헌재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습니다.
제3자 개입금지 제도는 1980년 12월31일 12·12 군사반란과 쿠데타 이후 전두환 신군부가 설치한 임시 입법기구인 국가보위입법회에서 노동쟁의조정법을 개정하면서 신설됐습니다. 재심 재판부는 노동운동과 민주화 세력의 연대를 끊는 노동 탄압 도구로 사용됐다고 판단했고, 헌법이 보장하는 근로 3권과 노조의 자주성을 침해했다고 봤습니다.
헌재가 법원의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인용하면, 윤씨와 홍씨 모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을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한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에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지명한 겁니다.
이 처장은 계엄 다음날인 12월4일 삼청동 대통령 안가 비밀 회동에 참석해 계엄 실패 후 사후 대응을 논의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함 부장판사는 과거 내렸던 판결로 헌재 재판관으로서 감수성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습니다. 그는 버스 요금 2400원을 횡령한 운전기사를 해고한 것이 정당하다고 판결하면서도, 친딸이 만 13세일 때부터 5년 가까이 성폭력을 저지른 아버지의 형량을 징역 6년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으로 감형한 사실이 알려졌습다.
윤씨와 홍씨 입장에선 25년 넘게 기다려온 재심 결과가 이 처장과 함 부장판사의 손에 달리게 된 겁니다. 더구나 한 권한대행이 '권한대행의 권한 행사'를 통해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을 지명·임명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도 논란이 제기된 마당입니다.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된 이완규 법제처장이 지난 1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주재 국무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씨와 홍씨의 법률대리인인 김태형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과거에 '제3자 개입금지' 위반으로 처벌받은 사람들이 무지하게 많았다"며 "이들을 대표해 사명감을 갖고 재심을 신청하고, 법원이 직권으로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한 상황에서 권한이 없는 재판관이 지명돼 결정하게 되면 손해를 회복하기 어렵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위헌적인 제3자 개입금지로 수많은 노동자들이 처벌받은 잘못된 과거사를 이제라도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헌재는 15일에 이어 이날도 평의를 열고 재판관 지명에 대한 헌법소원과 권한쟁의 심판의 가처분 사건을 심리하고 있습니다. 주심은 마은혁 재판관입니다. 헌재의 결정은 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이 퇴임하는 18일 전에 나올 것으로 전망됩니다. 재판관 9명 중 5명 이상이 가처분을 인용하면 한 권한대행의 재판관 지명은 효력이 정지됩니다.
강예슬 기자 yeah@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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