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지웅 기자] 상호관세 90일 연기로 발등의 불은 껐지만 협상 난이도는 더 높아졌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주한미군·방위비'의 3종 패키지딜(일괄거래)을 꺼내 들었기 때문인데요. 관세폭탄·주한미군 감축을 고리로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증액하려는 구상입니다. '동맹 우선'이란 미명하에 우선 협상국이 된 한국은 난처할 수밖에 없습니다. 경제와 안보는 별개 사안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연계하겠다고 하면 연계할 수밖에 없는 입장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경제·안보 엮어 '방위비 일괄타결'
트럼프 대통령은 9일(현지시각) 백악관 집무실에서 진행한 행정명령 서명 행사에서 '유럽이나 해외에 있는 미군을 감축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것은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유럽·한국에 주둔하는 미군에 대해 비용을 내지만 그에 대해 많이 보전받지는 못한다"며 "그것은 무역과 관계가 없지만 우리는 그것을 무역 협상의 일부로 할 것"이라고 못 박았습니다.
전날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총리와의 통화 내용에서 "대규모 군사적 보호에 대한 비용지불"을 언급한 데 이어 이틀 연속 주한미군 비용 부담 수준에 대해 불만을 드러낸 겁니다. 존 노 국방부 인도·태평양 차관보 대행도 이날 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한국 등 동맹국의 부담 확대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이는 주한미군의 역할을 '중국 견제'로 재조정하려는 최근 미국의 움직임과 무관치 않습니다. 미군이 북핵 억제를 위해 전략폭격기, 핵항공모함 등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전개하는 비용은 한국이 지불해야 한다는 식의 논리가 성립할 수 있는 겁니다.
정부는 난처한 기색이 역력합니다. 관세율 인하, 미국 무역적자 해소, 조선업 협력, LNG(액화천연가스) 수입 확대 등은 하나로 묶을 수 있지만 방위비 분담금은 다르다는 겁니다.
그러나 정부는 마찬가지로 불리한 이슈인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는 스스로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은 상태입니다. 투자 비용은 최소 440억달러(약 64조원)에 이르는데 경제성은 불투명해 중국도 철수한 사업에 '참여'를 시사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한미연합연습 ‘자유의 방패’ 연습이 시작된 10일 경기도 동두천시 주한미군 기지에서 스트라이커 장갑차가 대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방위비 패키지 협상' 선 긋지만…SMA 재협상 수순
알래스카 LNG라는 국정과제를 협상 의제로 삼는 데 성공한 트럼프 대통령의 다음 타깃은 '방위비 분담금 재협상'입니다. 향후 한·미 간 대화 과정에서 미국이 새로운 합의를 요구하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때 '주한미군 철수' 카드까지 꺼내 들며 방위비 분담액을 5배 늘린 50억달러(약 7조3000억원)까지 증액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지난 대선 기간엔 100억달러(14조6000억원)를 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전임 정부와 이미 협상을 마무리 지은 12차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의 9배가 넘는 금액입니다. 상호관세 부과에 있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조차 백지화된 상황에 미국에서는 '행정명령'에 불과한 12차 SMA 재협상은 정해진 수순입니다.
문제는 우선 '증액 규모'입니다. 트럼프 방위비 인상 요구에 일본은 선제적으로 방위비를 2027년까지 트럼프 1기 때보다 2배로 늘리겠다고 했습니다. 이에 한국 역시 비슷한 수준의 압박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그러나 한국은 세수 부족 탓에 일본처럼 급격히 국방예산을 늘리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최근 3년간 전년 대비 국방비 증가율은 4.4%→4.2%→3.6%로 감소 추세입니다.
또 성격이 완전히 다른 경제·안보 문제를 연계해서 논의할 경우, 협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방위비 분담금 인상은 이미 국회 승인까지 마친 양국 간 협정을 바꾸는 것이어서 '2달짜리 임시직'인 한덕수 대행의 권한을 넘어섭니다.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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