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물은 배를 뒤집을 수 있다
‘8 대 0’ 윤석열 파면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
대통령 탄핵은 국민이 배를 뒤집은 행위
헌법 위반과 헌정 훼손 판단, 박근혜 때와 같아
2025-04-07 06:00:00 2025-04-07 06:00:00
“4대 4로 기각될 겁니다.”
 
2017년 3월10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이 있기 전날이었다. 오랫동안 청와대에 근무해 정무 감각이 뛰어난 인사가 전화로 이런 내용을 전해 왔다. “그동안 헌재 재판관들의 발언이나 행동거지를 종합한 정보활동의 결과”라고도 덧붙였다. 그의 전망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윤석열 파면 결정을 앞두고 비슷한 경험을 했다. 검찰 간부 출신의 유명 변호사가 전화를 걸어와 “5대 3으로 기각된다”고 확언했다. 술자리 내기까지 걸었다. 이 법률 전문가의 전망 역시 완전히 빗나갔다. 여론조사에서 40%까지 나왔던 기각 전망과 달리, 만장일치로 파면을 결정했다. 탄핵의 의미와 조건을 고려하면 결정문 문구가 피청구인 윤석열에게 그토록 단호하고 여지가 없었던 까닭을 짐작할 수 있다. 우선 탄핵의 의미는 중국 당 태종 이세민이 자주 썼다는 금언에서 찾을 수 있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뒤집을 수도 있다.’
 
물은 백성이고, 배는 통치자를 이른다. 군주가 백성의 신임을 배신하면 백성은 군주를 바꿀 수 있다는 맹자 사상이 담겨 있다. 대통령 탄핵은 바로 물이 배를 뒤집는 행위다.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파면을 결정했지만 실은 국민이 헌재 결정을 통해 신임을 저버린 윤석열호를 뒤집은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국민 신임과 배신에 대한 판단을 두 단계로 한다. 우선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는지 살핀다. 지난 박근혜 파면 때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법 앞의 평등, 언론의 자유 침해 같은 헌법 조항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윤석열 파면 때는 국회 자율권과 계엄해제권, 계엄 선포 요건을 규정한 헌법 규정을 위반했다고 봤다.
 
대통령이 헌법을 위반했다고 바로 탄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물이 배를 뒤집을만한 ‘중대성’이 있었는지 두 번째로 판단한다. 중대성을 확인하기 위해 헌정 질서를 심각하게 훼손했는지 살핀다. 국민주권 원칙, 대의정치 원칙, 삼권분립 원칙, 법치주의, 기본권 보장이 헌법의 큰 틀인 헌정 질서다. 박근혜 파면 때는 국민주권 원칙, 법치주의, 기본권 보장 등의 헌정 질서를 훼손했다고 판단했다. 윤석열 파면 때는 어땠을까. 국민주권, 삼권분립, 기본권 보장, 법치주의 같은 헌정 질서를 무너뜨렸다고 봤다.
 
피청구인 윤석열은 더 이상 공적 지도자가 아니다. 그는 계엄 선포를 전후해 여러 차례 국민의 배신감을 해소할 기회를 놓쳤다. 그나마 피청구인에게 남은 것은 아름다운 퇴장이다. 자신과 그 추종자들로 인해 벌어졌던 사회갈등을 조금이나마 봉합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한다.
 
피청구인에게 닉슨 미국 대통령의 퇴임사를 권하고 싶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의회의 탄핵 절차가 진행되자, 궁지에 몰린 닉슨 대통령은 1974년 8월 사임한다. 불명예스러운 퇴진임에도 닉슨의 퇴임 연설은 미국 정치사의 명문으로 기억된다.
 
"임기가 끝나기 전에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견딜 수 없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으로서 저는 미국의 이익을 앞세우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미국은 온 시간을 직무에 쏟을 수 있는 대통령과 온 시간을 직무에 쏟을 수 있는 의회를 필요로 합니다."
 
이규연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 겸 미래학회 회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