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단통법)을 지킨 결과가 담합이라는 결론으로 돌아왔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년여간 조사 결과
SK텔레콤(017670)·
KT(030200)·
LG유플러스(032640) 등 통신3사가 시장상황반을 운영하며 매일 한 장소에 모여 번호이동 가입자의 순증감 수치를 공유하고, 합의에 따라 이를 인위적으로 조정했다며 1140억원 규모 과징금 처분을 결정했다.
당시 시장상황반 운영은 통신3사가 지원금을 수시로 변경하며 경쟁을 벌여 시장이 혼탁해진 데 따른 특단책이었다. 99만원짜리 갤럭시S3의 실구매 가격이 일부 유통망에서 10만원대까지 떨어지며 이용자 차별이 발생하자, 유통시장을 투명화하자는 차원에서 2014년 10월 단통법이 제정됐다. 통신3사는 이후 법 집행 가이드라인에 해당하는 방송통신위원회 행정지도를 받아왔다. 단통법 제정 이후 지원금을 과다 지급했다는 이유로 3사가 납부한 과징금만 누적 1463억원 규모다. 방통위의 행정지도를 따르지 않으면 과징금이 떨어졌던 것이다.
통신3사는 물론이고 제3자 입장에서 봐도 이번 공정위 처분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식으로 밖에 볼 수 없다. 공정위가 담합이라고 규정한 행위는 실은 단통법이라는 당시 현행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이뤄진 것이었다. 통신사들의 이같은 항변에도 그때는 단통법을 지키는 것이 맞았지만, 지금 기준에선 당시가 틀렸다는 식의 결론이 난 것이다. 정부의 기준이 때에 따라 다르다면 누가 믿고 따를 수 있겠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규제를 준수했더니 이제 와서 다른 잣대로 처벌하겠다는 것인데, 공적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린 처사라는 지적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공적 시스템 신뢰도 회복을 위해 이번 사태의 본질을 꿰뚫어 볼 필요가 있다. 단순히 부처간 엇박자라는 말로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본질적 문제는 공정위가 반복해서 위험한 헛발질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례로 앞서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공정위가 추진해왔던 공정거래법 개정에 대해 경쟁시장 원칙을 훼손하고 있다며 "용납할 수 없다"고 일갈한 바 있다. 플랫폼 사업자들에 입점업체와 계약서 작성을 의무화하고 경제적 이익 제공을 강요하거나 손해를 떠넘기는 행위, 경영활동 간섭 등에 대해선 사후적으로 제재하겠다는 게 법 개정의 주 내용인데, 이 때문에 미국과 통상마찰을 빚을 위기로까지 이어졌던 것이다. 공정위가 통상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범정부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대응하겠다며 마무리했지만, 경쟁시장 대원칙을 훼손하고 있다는 점은 오명으로 남게됐다.
이번에는 통신사가 담합했다며 시장경쟁을 강조한 듯 하지만, 실상은 특별법(단통법)보다 일반법을 우선시하며 특정 시장에 대한 무지를 드러냈다. 공정위는 현재의 무지막지한 통제를 멈춰야 한다. 단순무지한 권력의 칼날에 기업 불확실성만 키우고 있는 꼴이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대외적으로 인공지능(AI) 대변화 속 경쟁력을 제고하겠다고 외치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규제 불확실성 때문에 미래 전략에 속도를 내기 힘들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분야를 가리지 않는 공정위의 통제가 결과적으로 한국경제 발전에 걸림돌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가뜩이나 정국도 불안한데 공적 시스템 붕괴는 기업 발전 저해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결국 우리 경제에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 국민 피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공정위는 개별 시장의 규칙 설계자라기보다는 공정경쟁의 마지막 보루가 본연의 역할임을 기억해야 한다.
이지은 테크지식산업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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