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반체제 세력화된 한국의 보수우익
2025-03-06 06:00:00 2025-03-06 06:00:00
서천호 국민의 힘 의원이 헌법재판소, 공수처를 ‘때려 부숴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현 국방부 장관은 몇 헌법재판관을 ‘처단’해야 한다고 했고, 황교안 전 총리는 서부지법 폭동을 ‘의거’라고 칭송했다. 국민의 윤상현 의원은 서부지법의 폭도를 ‘애국시민’이라고 칭찬했다.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이 헌법재판소를 비판하는 서한을 세계인권기구연합에 보냈다고 한다. 한 국가의 의원, 각료, 최고위직 공무원들이 국가의 헌법 질서나 핵심 국가 기관을 공개적으로 파괴하라고 선동하는 이 상황은 이해불가다.
 
헌법과 법치를 부인하고 폭력을 선동하는 것은 ‘반체제’ 행동이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반체제 세력’으로 지목된 집단은 언제나 좌익 친북 성향의 인물이나 조직이었다. 그런데 이제 ‘반체제’라는 수식어는 보수,우익세력에게 합당한 용어가 되었다. 지금 한국에서 폭력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부수자는 반체제 좌익 세력은 사실상 사라졌지만, 그 자리에 헌법을 부인하고 공공연하게 폭력으로 사법기관이나 국회를 부수자는 반체제 우익이 등장했다. 윤석열의 12.3 비상계엄과 포고령, 이후 국회의 군대투입, 이후 서부지법 사태 등이 보여주었듯이 그들은 입법부나 사법부 활동을 제압하고, 폭력으로 헌정을 중단시키려 했다. 윤석열이 임명한 최고위 각료인 최상목 권한대행은 국회와 헌재의 마은혁 재판관 임명 결정을 거부한다. 이 역시 헌법과 선출권력의 결정을 무시하는 반체제적 행정권 행사다.
 
한국 보수우익이 반체제, 준파시즘 세력이 된 것은 새로운 일인가? 아니다. 아니다. 과거 박정희, 전두환의 쿠데타야말로 폭력으로 헌정 체제를 중단시킨 내란이자 반체제 행동이었다. 단지 그 내란, 쿠데타 주범들이 곧바로 처벌되지 않았던 이유는 그들이 군사, 경찰, 정부 조직을 장악하고 있었던 대통령이었고, 그들의 통치 체제가 이후 7.8년 더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12.3 비상계엄이 그대로 실시되었다면 윤석열과 계엄사령부는 온 국민이 생중계로 보았듯이 국민이 선출한 국회의원을 적으로 몰아서 체포, 구금했을 것이고, 노상원의 ‘수거’ 명단에 들어있는 인사들은 과거처럼 고문, 폭력의 희생자가 되었을 수도 있다.
 
좌익 반체제 세력은 사회주의 혁명을 추구하나, 우익 반체제 세력은 파시즘을 지향한다. 그런데 극우 독재인 파시즘 세력은 대체로 적극적인 목표나 가치를 원래 갖고 있기보다는 반혁명, 적의 제거와 기득권 유지 자체가 목표다. 이들 극우 반체제 세력의 공통점은 자본주의 경제질서와 대자본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서, 민주주의를 거부하고 대중의 물질적 본능과 인종주의 편견 등을 이용한다. 이번의 12.3 비상계엄을 감행한 윤석열과 국힘 지도부도 야당이 원인 제공자라고 둘러대지만, 이들 누구도 그들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어떤 정책을 펴려 했는지 말하지 않는다. 당연하다. 애초부터 그런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유럽이나 미국에 창궐하는 극우 파시즘 세력은 과거 그들의 선배들처럼 국가지상주의, 인종주의를 옹호하기는 하지만 자국의 헌법 질서나 법치를 노골적으로 부인하거나 그런 선동을 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국가 최우선, 자국 노동자 일자리 창출이라는 명분은 내걸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극우 파시즘 세력은 헌법과 법치를 부정하고, 이들을 따르는 ‘아스팔트 극우’는 성조기를 흔들면서 중국을 원수로 여긴다. 어이없는 행동이다.
 
한국 우익이 반체제화된 것은 그들의 위기의식, 권력 상실의 두려움이 그만큼 크기 때문일 것이지만, 한국 우익 내에서 극우 파시즘화를 견제할 수 있는 건강한 보수세력이 취약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과거 나치의 집권 과정의 독일이나 트럼프를 두 번이나 대통령 자리에 올린 미국처럼, 자유민주주의 세력의 집권 후 정책 실패 혹은 이중성도 우익의 파시즘화에 일정한 책임을 갖고 있다. 즉 자유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세력이 말로는 개혁과 민주를 떠들어도 실업과 불평등은 완화되지 않고, 건강한 시민 세력을 육성하려는 노력을 제대로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파시즘이라는 병균이 온 사회에 퍼졌다고 볼 수 있다.
 
김동춘 좋은세상연구소 대표. 성공회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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