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우선주의'가 뒤흔든 세계질서…촉박한 '골든타임'
관세부터 신확장주의까지, 기존 질서 '폐기'
트럼프 1기 당시 한·미 통화·회담과 대비
2025-02-21 14:58:39 2025-02-21 14:58:39
[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더 강력해진 '미국 우선주의'를 들고 돌아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세계질서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국익을 최우선에 둔 트럼프식 미국 우선주의는 동맹 중시 시스템의 해체까지 예고하고 있는데요. 결국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라는 가치를 중시해 온 윤석열정부의 외교·안보 정책도 흔들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톱다운'(하향식) 정상외교가 이어지고 있는 와중에도 한·미 정상통화는 성사되지 않고 있어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 시간) '사면 차르(pardon czar)'에 흑인 여성인 앨리스 존슨을 임명했다.사진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백악관에서 열린 '흑인 역사의 달' 행사에서 연설을 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수십년 외교정책 버릴 태세"
 
21일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한 달을 종합하면 '속도전'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1기 집권 때와 달리 2기 행정부 전반을 충성파로 채운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첫날부터 자신의 공약을 빠른 속도로 이행했습니다.
 
대선 기간 언급했던 불법 이민자 추방부터 관세 인상과 연방정부 개혁, 두 개의 전쟁 종식 등이 대표적입니다. <워싱턴포스트>의 분석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31개 분야의 대선 공약 중 16개를 이미 실행 중입니다. 
 
이와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급진적 정책 추진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혼란을 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는 파나마운하 운영권 반환 요구와 그린란드 획득 의지 표명에 이어 가자지구에 대한 '점령·소유'까지 언급하며 '신확장주의'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형성한 '세계 경찰' 역할은 물론 동맹주의 질서까지 뒤집은 겁니다.
 
결정적인 장면은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에서 드러났습니다. 20일(이하 현지시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키스 켈로그 미 대통령 우크라이나·러시아 특사가 만나 종전 문제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하지만 '공동 기자회견'은 '미국 측 요청'에 따라 취소된 것으로 확인됩니다. 
 
미국과 우크라이나 사이에 종전에 대한 구체적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는 해석도 있지만, 최근 양국의 사이가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9일 젤렌스키 대통령을 "선거를 치르지 않은 독재자"로 칭했습니다. 게다가 미국은 러시아와의 회담에서 경제 협력 가능성을 내비쳤습니다. 
 
'침략자'인 러시아에 맞서 국제사회의 공통된 대응을 주도해 온 미국의 입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과 동시에 뒤집힌 셈입니다.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라는 기치로 우크라이나를 지원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경제 협력에 방점을 찍고 친러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겁니다.
 
게다가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은 러시아의 협상 의지에 따라 대러 제재를 조정할 수 있다고 시사했습니다. 그는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미국이 종전 회담 진행 상황에 따라 대러 제재 강화와 완화, 양쪽을 모두 고려하는가'라는 질문에 "그건 아주 좋은 표현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월스트리트저널>은 "2차대전 종전 이래 미국 주도의 동맹 시스템은 미국의 힘을 강화했다고 대다수 외교정책 전문가들이 말한다"며 "동맹국들에 대한 거리두기에서부터 적들에 대한 칭찬에 이르기까지, 트럼프 대통령은 수십년간 이어온 미국의 외교정책을 버릴 태세"라고 지적했습니다.
 
세계적 정치 리스크 분석가인 이안 브레머 유라시아그룹 회장도 "미국은 더 이상 상당수 동맹관계가 적어도 부분적으로 기초를 두고 있는 '공통 가치'를 갖고 있지 않다"면서 "바이든은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라는 냉전적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봤지만, 트럼프는 다르다. 미국이 동맹국과 세계 질서에 대한 약속을 지킬 힘이 없다는 점이 분명해졌다"고 짚은 바 있습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오른쪽)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0일(현지 시간) 키이우 대통령실에서 키스 켈로그 미국 대통령 우크라이나·러시아 특사와 회담하고 있다. 두 사람은 만나 종전 문제를 논의했지만 공동 기자회견은 하지 않았다. (사진=뉴시스)
 
무너진 '동맹 외교'…외교 공백에 '속수무책'
 
트럼프 대통령이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에 기반한 동맹 기조의 변화를 예고함에 따라 대한민국에 미칠 파장도 커질 전망입니다.
 
윤석열씨는 바이든 행정부와 발맞춰 '가치 외교'를 추구했고, 북·중·러 대 한·미·일이라는 신냉전 대결구도를 고착화했습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에 나서면서 기존의 구도가 해체되는 모양새입니다. 
 
주러시아 공사를 역임한 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은 '통일코리아' 기고에서 "한·러 관계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미·러 관계 변화에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대러 제재에 동참해 온 한국도 관계 복원에 나서야 한다는 겁니다.
 
문제는 외교 공백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일본·인도 등과 정상회담을 진행했고, 프랑스·영국 등과도 연쇄 정상회담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관세 부과의 대상이었던 캐나다·멕시코도 외교를 통해 협상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런데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아직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 황교안 대행이 트럼프 대통령 취임 10일 만에 통화한 것과 대비될 수밖에 없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취임 한 달 만에 트럼프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한 바 있습니다.
 
러시아 크렘린궁은 트럼프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2월 안에 열릴 수 있다고 예고하기도 했습니다. 이때 양 정상은 경제협력 문제는 물론, 북한 문제를 거론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결국 외교 공백 상태에서 미·러 정상회담이 진행되면 북한 문제에 있어 '코리아 패싱'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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