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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를 혁명의 나라라고 하지만, 이제는 대한민국이 혁명과 나아가 불명예스럽게도 쿠데타의 나라라고 불리게 될 성싶다. 조선왕조 때부터 역성혁명을 운운한 걸 보면 우리에게 혁명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고종황제 폐위에도 불구하고 일본인은 상상도 못할 의병이 일어나고 상해에 망명정부를 세우는 우리 한국의 근현대사는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5·16 군사쿠데타 후 군사반란을 일으키면서 자칭 군사혁명이라고 가짜 혁명공약을 내세우고 혁명이었던 4·19를 의거라고 격하시켜버려, 혁명과 쿠데타 사이에 혼돈이 생겨났다. 혁명은 좋고 쿠데타는 나쁜 것이라든가, 성공하면 혁명이고 실패하면 쿠데타인 것으로 착각하는 이가 많았다. 혁명과 쿠데타는 좋고 나쁜 것이 아니라 둘 다 현행헌법을 폐기·정지시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주체에 따라 헌법과 쿠데타가 구분되어질 뿐이다. 군인·경찰·공무원 등 국가기관이 주동하면 쿠데타, 학생·농민·노동자·언론인·지식인 등이 나서면 혁명이 된다. 그래서 4·19 혁명, 5·16 군사반란, 12·12 신군부쿠데타가 맞는 것이다.
1995년 김영삼 정권 시기에 5·16 군사혁명이 5·16 군사쿠데타로 공식화됨으로써 어용학자들의 혁명정부 및 위기정부론도 동시에 폐기되었다. 김영삼의 문민정부 시기 과거사 청산이 진행되던 중 4·19가 35주년이 되던 해 4·19는 혁명으로 승격시키고 5·16은 군사정변 즉 쿠데타로 정리한 것이다. 대법원 역시 2011년 국가보도연맹사건 피해자들의 국가배상 소송에서 5·16을 쿠데타로 규정하였다.
혁명은 국가기관과 상관없는 민중의 힘이 아래로부터 위로 작용하여 상위의 권력을 배제하는 것을 말하며, 쿠데타는 국가기관 내의 강력한 지도자 또는 정치세력에 의하여 힘이 위에서 아래로 작용하여 권력을 장악하는 것을 말한다. 혁명은 법이론상으로는 헌법제정권력까지도 변경시키는 근본적인 혁명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고 쿠데타는 군부·경찰·관료 등 국가기관에 의한 헌정유린에 불과한 것이다. 돌이켜보건대, 5·16 군사쿠데타에 위기정부론과 국가긴급권을 동원하여 혁명권을 부여하는 것은 반국가 및 역사적 재앙을 초래한 학문적 패륜이었다.
작금의 탄핵과 내란죄 심판과정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국민들에게 12·3 내란사태는 현직 대통령에 의한 반헌법의 불법적 쿠데타임을 분명히 말씀드린다. 2024년 12월 3일 밤, 한국 사회는 많은 것을 잃을 뻔했다.
우리의 대표인 국회·지방의회가 사라지고, 정당과 시민단체는 문을 닫게 되며, 언론·출판의 자유를 송두리째 빼앗길 뻔했다. 노동자의 노동권이 박탈되고 전공의·의료인들이 처단될 뻔도 했다. 계엄사령관 육군대장 박안수는 영장없이 체포·구금·압수수색 하겠다는 포고령에 부모가 준 귀한 이름 석자를 올리고 있었다.
그 날의 비상계엄은 국가사회의 위기에 대한 응답이기 보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자의적인 상상적 비상사태와 결합된 권력의지 및 반국가적 행동에 의하여 자행되었고, 국민이 멈춰 세웠다. 12·3 내란사태를 단순히 인위적인 작위정치의 노골화 차원이 아닌, 상당기간 한국사회를 지배해온 거대한 군사반란 흑역사의 연장선상에서 보아야 반란과 민주주의에 대한 제대로 된 해부와 해법이 나온다.
요컨대, 깨어있는 시민과 정치권의 각성이 12·3 비상계엄과 내란사태를 해제시키고 심판대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지금 헌법재판소와 경찰·검찰·공수처, 법원이 사법판단을 헌법과 법률에 따라 별 탈없이 진행하고 있다.
박상철 (사)미국헌법학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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