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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월 10일 '국회의원 국민 소환제'를 제안했다. 입법으로 도입할 수 있다는 견해와 개헌 사항이라는 지적이 충돌한다. 입법론자들은 헌법에 저촉되지 않고 국민주권주의 원칙에 부합한다고 주장한다. 개헌론자들은 헌법 제42조가 국회의원의 임기를 보장하는 반면, 소환투표의 근거 조항은 없다고 지적한다.
한국의 국회의원직 상실 관련 현행 제도는 모두 헌법에 근거가 있다. 첫째,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에 따른 의원 제명. 헌법 제64조 제3항에 의한 것이다. 둘째, 비례대표 의원의 탈당. 헌법 제41조 제2항은 비례대표제 관련 사항을 법률로 정하도록 했고, 탈당한 비례대표 의원은 공직선거법에 따라 직을 상실한다. 셋째, 유죄 판결로 인한 의원직 상실.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거권(제24조)과 공무담임권(제25조)을 갖는다. 법률에 따라 선거권과 공무담임권을 상실하며 공적 지위를 잃을 수 있다. 하지만 헌법에 국회의원을 투표로 소환할 근거는 없다. 국회의원 소환제를 도입하려면 개헌이 불가피하다. (지방 공직자는 헌법상 보장된 임기가 없으니 지방자치법에 따른 주민소환제가 가능하다.)
국회의원 소환제가 개헌까지 해가며 도입할 가치가 있는지도 따져야 한다. 사실 현행 주민소환제만 해도 민주적 정당성에 결함이 있다. 해당 지역 유권자 3분의 1 이상이 투표해 유효투표자의 과반이 찬성하면 소환에 성공한다. 전체 유권자의 1/6 찬성만으로 소환이 가능한 셈이다. 가령 해당 지역 선거에서 투표율이 60%고 당선자 득표율이 40%면 이 공직자는 전체 유권자 24%의 지지를 받은 것인데, 그보다 더 낮은 찬성으로도 소환될 수 있다. 부당하다.
공직자 소환제가 정당성을 가지려면 그의 당선시 득표수(또는 전체 유권자 대비 득표수)보다 소환 찬성자수(또는 전체 유권자 대비 소환 찬성자수)가 더 많아야 한다. 문제는 이 경우 소환 가능성이 바닥에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2007년 주민소환제 시행 이래 소환된 공직자는 지방의원 2명뿐이었다. 요건을 더 높이면 더욱 쓸모 없는 제도가 될 터이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 같은 이들도 국회의원 소환제를 적극 지지해온 데에는 이런 '믿는 구석'이 있는지도 모른다.
소환제는 시행하더라도 소선거구제에 국한해야 한다. 중대선거구제의 목적은 '민심에 비례한 의회 구성'이다. 이를 통해 소수파 시민도 어느 정도의 선을 넘으면 대표자를 가진다. 여기서 의원 하나를 놓고 OX 투표를 통해 소환하는 것은 다수파의 선거 불복이다. 중선거구제에서 선출된 기초의원도 소환 대상에 포함한 현행 주민소환제도 그릇된 제도이다.
국회의원 소환제는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벨라루스 등지에서 시행하고 있으나 도입 이후 정치가 더 좋아진 사례는 없다. 서유럽과 북유럽, 미국에는 아예 구현된 적이 없다. 대선거구제-비례대표제 국가들은 의원의 면면보다 의회의 전체 구성을 중시하거니와, 소선거구제인 미국, 영국, 프랑스에서도 도입하지 않은 것이다. 영국에 있다는 소환제는 유죄 선고를 받은 의원을 유권자 일부의 서명으로 소환하는 제도다. 유죄 의원을 자동 퇴출하는 한국 입장에선 본받을 것이 없다.
국회의원 소환제는 사이비 개혁이다. 물고기 몇 마리만 바꾸는 게 물갈이인가. 의원은 의회에서 1/n에 불과하며 어차피 다음 선거에서 심판에 직면한다. 끌어내리는 데 골몰할 시간에 의회를 제대로 구성할 생각을 해라. 이번에도 이재명 대표는 선거제도 개혁을 침묵으로 뭉갰다.
김수민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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