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역발산기개세'를 부를 윤석열의 실존적 위기
2025-02-17 06:00:00 2025-02-17 06:00:00
8차 변론까지 마무리 된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탄핵 심판에는 더 이상의 변수가 없다. 한마디로 윤석열에게는 모든 게 불리해졌다. 김용현, 이상민, 조태용, 신원식의 증언은 얼핏 보면 윤석열에게 유리해 보일지 모르나 국무위원에게 전달한 계엄 문건이 실존하며, 계엄 전 국무회의가 헌법적 절차를 지키지 않은 요식 행위라는 점이 밝혀졌다. 게다가 윤석열의 관점에서 보면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과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은 국회 봉쇄와 의원 체포에 대한 치명적 증언을 했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과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의 증언은 다소 윤석열에게 유리해 보인다. 그러나 방첩사 수사단장과 수방사 경비대장이 자신의 상관인 사령관들의 증언을 뒤집어 버렸다. 의원을 체포하여 구금하라는 구체적 지시가 있었다는 거다. 게다가 특전사와 수방사의 경우 윤석열과 김용현의 국회 봉쇄와 의원 체포 지시를 계엄 당시에 들은 사람만 수백 명이다. 윤석열에게는 매우 절망적인 상황이다. 게다가 계엄 해제 직전에 합참 지휘통제실의 결심지원실에서 윤석열과 김용현이 나눴다는 대화 내용은 2차 계엄까지 의심하게 할 구체적 정황을 담고 있다. 지금 윤석열에게는 도움이 되는 증언자가 거의 없는 상황이다. 사실 이번 계엄과 내란 사태는 물리력과 계획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윤석열이 사람을 잘못 보았다는 데 실패 원인이 있다. 인간의 갈등과 혼란과 두려움, 부끄러움과 망설임이라는 인간적 변수가 고려되지 못한 것이다. 윤석열은 자신이 명령하면 부하들은 저절로 움직일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국가는 기계가 아니었다. 사람과 사람이 상호작용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창출하는 하나의 생태계였다.
 
탄핵 심판이 윤석열에게 지극히 불리한 방향으로 전개되는 동안 명태균 황금폰의 내용이 서서히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게다가 경호처의 마지막 저항선이 무너지면 경호처 서버에서 계엄 전후에 비화폰으로 통화한 내역이 밝혀진다. 긴박한 계엄 전후에 통화 내역은 ‘의미의 그물망’이다. 김건희 여사와 조태용 국정원장 간의 수상한 문자 메시지, 윤석열과 사령관과 노상원으로 이어지는 국가 전복과 북한과 협력하여 정치인을 암살하려는 망상까지 모든 게 연결되어 있다는 실상이 드러나게 된다. 어쩌면 계엄을 통해 관철하려던 비상대권이 끝이 아니라 윤석열 장기집권의 초석으로서 통일 대권까지 구상한 것은 아닌지, 궁극적 의미와 목적에 대한 진실 규명이 더 중요한 본질이다. 만일 계엄이 성공했더라면 그 다음에 어떤 통치 모델과 국가 비전으로 나아가려 했던 것인지가 이 역사적 사건을 이해하는 데 마지막 관건이 될 것이다. 더불어 인간의 망상에는 한계란 없다는 점이 우리를 전율케 할 것이다. 비록 지금의 헌법재판과 검찰 특수본 수사가 여기에 미치지 못한다 할지라도 장기간에 인내심을 갖고 역사적 진실을 밝히려 한다면 의외로 많은 것이 드러날 것이다.
 
사면초가의 윤석열에게는 실존적 위기 상황이 다가오고 있다. 권력이 소멸하고 희망이 사라진 권력자에게 더 이상의 카리스마는 남아 있지 않다. 한나라 군에 포위된 항우가 부른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힘은 산을 뽑을 만 하고 기운은 세상을 덮을 만 하다)와 같은 탄식이 나올 법한 것이 지금의 윤석열의 처지다. 그 마지막 대목이 애첩을 향해 “우희여, 우희여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는 절규다. 항우는 절망의 순간에 술을 먹고 이 시를 썼다. 지금 윤석열이 한남동 관저에 있는 여인을 향해 나올 법한 탄식이 아닌가. 헌법 심판과 사법의 엄혹한 과정은 한 권력의 존재 자체를 제거하는 과정이다. 이는 윤석열이 정적에게 강요했던 ‘수거’ 과정이고, 윤석열의 옥중정치와 지지층 결집을 통한 사법 무력화는 ‘호수 위의 달그림자’일 뿐이다. 사라지는 권력은 그 마지막 비극적 장면이 드라마틱하다. 그 비장한 마지막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얼마간의 술을 제공할 수 있지 않은가. 그렇게 하면 우리는 21세기 문명 사회에서 또 다른 역발산기개세를 듣게 될지도 모른다. 사라질 권력은 사라져야 역사가 완성된다. 그 드라마틱한 엑시트를 우리는 엄중한 마음으로 기다려야 한다. 그리 멀지 않은 시간에 말이다.
 
김종대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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