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권위적 불통' 기업에 면죄부 주는 반도체특별법
2025-02-11 06:00:00 2025-02-11 06:00:00
한국 사회가 위기이다. 뒤늦게나마 차곡차곡 쌓아온 민주주의 기반은 위태롭다. 경제 위기는 발등의 불이다. 단지 순환적 침체의 양상을 넘어서 대불황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기술 대격변의 시기에 이미 뒤져졌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단지 반도체 산업과 삼성전자의 문제만은 아니지만, 선도 산업과 기업의 성패에 경제 전체가 영향을 받는다. 트럼프 정부의 등장으로 대외적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이 커졌다. 과거 불황의 시기에는 수출과 내수의 양극화로 빈부격차는 커졌어도 윗목은 건재했는데 이마저도 장담할 수 없다.
 
반도체특별법이 제기된 배경이다. 특별법이란 비상한 수단이 동원되는 건, 기존 제도와 정책의 빈구석이 크기 때문이다. 위기 산업을 지원하는 법률과 제도는 이미 있지만, 구조적 경쟁력 위기를 겪는 중추 수출산업을 특별히 지원한다는 정책적 개입을 상징한다. 그런데 반도체산업을 특정한 거 빼곤 다를 게 없다. 과연 특별법이란 형식이 필요한지 의문이다. 정치와 정책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라는 명제가 떠오른다. 정치적 상징으로서 의미가 있겠지만, 실제 위기 타개에 도움이 될 건 없다. 반도체 특별법에 주 52시간 상한제 예외를 적용할지 여부가 논란이 되었다. 현재 유연근무제도라는 예외가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다. 열의와 창의성이 중시되는 업무에 노동시간 예외를 허용하는 발상은 대중과 기업의 구태의연한 의식구조를 강화할 뿐이다.
 
재벌 대기업체제의 한계로 지적된 제왕적 의사결정 구조로 인한 수직적, 권위적 기업문화와 현장 기술진의 견해가 반영되지 않는 불통의 소통구조의 문제가 중단없이 장시간 일하지 않는 것이 문제인 양 둔갑했다. 거대 기술 기업의 성패는 특정 시기의 성과로만 판단할 수 없고, 오늘의 승자가 내일의 패자가 되고 그 반대가 될 수 있다. 그래도 엔디비아가 현장 개발직을 신뢰하고 의견이 반영되는 수평적 소통구조를 가지고 열의와 창의성을 활용하는 체제를 갖춘  반면에 재벌체제의 층층시하의 의사결정구조에서 현장 기술직의 의견 반영이 꽉 막힌 삼성전자가 대비되는 건 분명하다. 반도체 특별법은 기술 개발직을 장시간 일하게 하자고 할 뿐, 이들의 능력과 열의를 북돋을 방안에 대해선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1987년 직선제로 상징되는 정치적 민주주의 첫 출발에서부터 지속 확장되었다고 믿었다. 이 기반하에서 사회 구성원 대다수의 생활권이 보장되는 경제적 민주주의로, 이해관계자의 의사결정권이 보장되고 민주적 소통이 이루어지는 산업민주주의로 확장되는 것이 사회적 성숙의 지표이다. 그런 믿음은 작년 12월 3일 계엄 사태로 허물어졌다. 경제와 기업에 미치는 악영향도 컸다. 그러나 기업이 민주주의 쇠퇴의 선의의 피해자이기만 한 건 아니다. 기업은 사회적 여건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사회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압도적 행위자이다. 현장의 의견이 무시되는 상명하복의 구태의연한 기업구조와 제왕적 의사결정권자만 바라보는 권위적 기업문화는 우리 사회의 합리적이고 성숙한 소통구조로의 진전을 지체, 왜곡한 원인 제공자이기도 하다. 경제 정점에 있는 재벌 기업의 권위주의 구조는 원하청관계를 통해 위계화되어 확대 재생산된다. 재벌 기업의 압도적 경제력으로 사회 전체가 위계화된다.
 
기업 의사결정구조의 합리화는 기업의 장기적 경쟁력을 위해서도 사회의 민주적 성숙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반도체 특별법은 권위적 기업구조에 면죄부를 주는 메시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 기업이 기술 대전환의 시대를 제대로 헤쳐나가기 위해서도 기업 의사결정구조와 기업문화의 일대 전환이 필요하다.
 
김성희 L-ESG평가연구원 원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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