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부지법 폭동사건이 벌어진 1월 19일은 지인의 아들 결혼식 날이었다. 지인은 전두환 독재정권에 일대 타격을 가한 1985년 서울 미 문화원 점거사건에 참여했고, 그 이후 노동운동, 진보정당 운동에서 맹활약한 인물이다. 점거 사건 '동지'들을 비롯해 전두환 정권 등에 맞서 싸운 학생운동, 노동운동 인사들이 대거 이 결혼식에 모였다.
날이 날이니 만큼 결혼식 식사자리에서 그날 새벽 폭동사건이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날 나온 말들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충격'이다. "전두환 정권, 노태우 정권과 싸우기 위해 별의별 짓을 다 하고 온갖 구상을 다 했지만 법원을 직접 공격한다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12·3 내란은 충격과 공포 그리고 의문을 품게 하는 사건이다. 한국 현대사 초유의 '대통령 탄핵'을 평화롭게 극복하고 민주헌정질서를 복구해낸, 21세기 세계 민주주의의 모범국에서 군을 동원한 친위쿠데타라니…도대체, 왜?
슬프게도 그 답의 일단이 1·19에서 드러났다. 그들은 반대파를 '빨갱이', '중국인'이라면서 "빨갱이는 죽여도 좋다"고 극단적 혐오감을 드러냈고, '부정선거'라는 가짜뉴스를 거의 종교적 수준에서 맹신했으며, 극우·보수 성향 기독교단이 그 조직적 뿌리였다. 그들은 노령층 성조기부대(태극기부대라고 부르기에는 태극기가 아깝다)가 아니라 젊은 층에도 확고하게 그 세력을 갖고 있었다. 이들의 사회인식을 집약한 표현이 바로 윤석열의 '반국가세력'이었으니, 1·19 폭동이 12·3 내란의 뿌리였던 것이다.
미국의 극우 부정선거 음모론들자들은 2021년 1월 6일 미 의회에서 폭동을 일으켰다. 그들이 내건 'Stop the Steal' 구호를 한국의 윤석열 지지파가 그대로 갖고 쓰고 있으니, 미국의 J6이 한국 1·19서부지법 폭동의 뿌리인 셈이다.
파시즘 연구의 대가 로버트 O. 팩스턴은 〈파시즘-열정과 광기의 정치혁명〉(교양인, 2005년)에서 이탈리아 파시즘과 독일 나치즘 연구를 통해, 보수주의자들의 '협력'이 없었다면 파시즘은 성공할 수 없었다고 진단했다.
큐어넌과 티파티 등 미국 극우는 성공했다. 공화당을 손에 넣으면서 트럼프를 당선시켰다. 한국에서는 어떨까? 가뜩이나 수구적 성격이 강했던 국민의힘까지는 얼추 장악한 것 같다. 그러나 최종 성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음모론은 그 성격상 도전자에게는 유용한 무기이나 권력자에게는 그렇지 않다. 트럼프도 도전자일 때는 성공했으나 자신이 권력자인 대통령일 때는 실패했다. 제도적으로도 미국과 달리 한국은 대통령 단임제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그 저변이 너무 넓다. 부정선거 주장을 믿는 국민이 30%에 달한다니 말이다.
황방열 선임기자 hb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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