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AI 대전' 발발…의대에 인재 뺏기는 한국
중, 세계의 '공장'에서 '연구개발 실험실'로
한, 의대 증원발 이공계 기피 심화 우려
2025-01-31 16:31:27 2025-01-31 16:31:27
[뉴스토마토 윤영혜 기자] 중국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의 부상으로 미·중 간 AI 기술 패권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미래를 위한 대규모 투자에 나선 중국은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연구 개발 실험실'로 탈바꿈하고 있는 모습인데요. 
 
주요국이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며 과학기술 분야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사이 한국은 낮은 처우와 불안한 직업 안정성 등을 이유로 젊은 이공계 인력들이 속속 떠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해부터 시작된 정부의 의대 증원 후폭풍으로 '의대 쏠림'이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딥시크와 엔비디아 로고(사진=로이터/연합뉴스)
 
중국, '만인계획'으로 과학 인재 싹쓸이
 
31일 텔레그램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파벨 두로프는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딥시크의 성공 이후 많은 사람이 중국이 AI 분야에서 미국을 빠르게 따라잡은 것을 놀라워하고 있지만 중국 알고리즘 효율성의 발전은 갑자기 나온 것은 아니다"라며 "경쟁을 조성하는 중국의 교육체계 덕분"이라고 전했습니다. 
 
딥시크가 저비용 반도체를 사용했지만 뛰어난 성능을 가진 추론 AI 모델 '딥시크 R1'을 선보이면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가운데 중국의 교육모델과 최고의 인재들을 중국으로 지속적으로 유입시킨 중국 정부의 지원에도 이목이 쏠리고 있습니다. 
 
중국은 2008년부터 시작한 '천인계획(千人計劃)' 프로젝트를 통해 해외 고급 인력 영입을 추진했습니다. 노동력 대국인 중국이 장기적으로 미국을 제치고 과학기술 최강국이 되기 위해 과학기술 발전에 필요한 인재 2000여 명을 5∼10년 안에 육성하겠다는 목표였는데요. 추진 4년 만에 목표를 뛰어넘어 4000여명의 과학자를 유치하면서 '만인(萬人)계획'으로 확대했습니다. 
 
단기간에 세계적 인재를 모은 비결은 파격적인 대우인데요. 고액 연봉은 기본으로 최대 100만위안(약 1억7000만원)의 생활비를 주고 주택 의료서비스 등 혜택이 따르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수학, 물리학, 환경과학, 재료과학, 인공지능 등 다양한 분야의 인재들이 유명 국제 기업의 수석 과학자 또는 세계적 수준의 연구기관에서 정년을 보장받기도 하는데요.
 
중국 관영 영자지 글로벌타임스에 따르면 중국 내 선도적 과학자의 수는 2020년 1만8805명에서 지난해 3만2511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세계 과학계에서 중국 거주 과학 인재가 차지하는 점유율도 같은 기간 16.9%에서 27.9%로 상승했습니다. 
 
중국이 올해 배출할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분야 박사 인력은 8만명으로 추산되는데요. 미국의 두 배이자 세계 최대 수준입니다. 
 
자연대 경쟁률 하락하는 사이 의대 경쟁률↑
 
이에 반해 한국의 과학 인력 생태계는 흔들리고 있습니다. 저출생으로 인한 학령인구 감소와 열악한 처우로 우수 인재의 이공계 기피 현상은 가속화되고 있는데요.
 
특히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의대 증원 등 사회적 합의 없이 정부가 무리하게 밀어 붙인 정책이 악재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은 이전해 3058명에서 4565명으로 확대된 바 있는데요. 종로학원에 따르면 2025학년도 의대 정시 지원자는 전년보다 2421명(29.9%) 증가한 총 1만519명에 달했습니다. 의대 정시 지원자가 1만 명을 넘어선 것은 6년 만입니다.
 
2026학년도 의대 정원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새로운 의사 결정이 없을 경우 5058명이 되는데요. 이공계 기피 현상이 심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실제 25학년도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의 자연계열 경쟁률은 4.21 대 1로 지난해 4.63 대 1보다 하락했습니다. 반면 의대 경쟁률은 지난해 3.71 대 1에서 올해 3.80 대 1로 올랐습니다. 
 
명문대 자연계열에 합격해도 포기하는 학생이 많습니다. 연세대 수시 자연계열 합격자 중 1046명이 등록을 포기했는데요. 모집 인원 1047명의 99.9%에 해당합니다. 
 
10년 추이를 살펴보면 이공계와 의약계열의 차이가 뚜렷합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의 '과학기술인력정책의 주요 전환과제 설정 및 과제별 현황진단'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23까지 동안 자연계열 재적생 수는 5만명이, 공학계열은 3만명이 줄었습니다. 이와 달리 의약계열은 3만명이 늘었습니다. 
 
홍성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과학기술인재정책센터 선임연구위원은 "2028년 정도부터 이공계 분야 인력 규모가 본격 꺾이는 만큼 미리 대비해야 한다"며 "우리나라 정책이 대부분 공급을 늘리는 식이지만 이 경우 시장에서 대우를 안 해주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진단했습니다. 정부가 무턱대고 장학금을 늘리는 식으로 이공계 대학 정원을 늘리면 오히려 시장에는 공급이 늘어 처우가 열악해지는 악순환이 발생한다는 지적입니다. 
 
이어 "똑똑하면 의사를 선택하는 게 낫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는데 비전이 안 보이는 연구를 누가 하고 싶겠냐"며 "핵심 인력들이 연구하기 좋은 생태계를 조성해 인재를 유인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윤영혜 기자 yyh@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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