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원달러환율이 1450원을 넘나들며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의 수준으로 돌아가면서 국내 증시가 침체에 빠졌지만 고환율의 수혜가 예상되는 조선업종은 나 홀로 강세 행진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선처럼 수출 비중이 높은 현대차, 기아 등은 이와 달리 시장의 하락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수출기업들이 모인 조선과 자동차의 온도 차이는 매출을 반영하는 방식과 비용 등에서 갈린 것으로 보입니다.
차·조선 똑같이 철강재로 만들어 수출하는데…
2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는 2400선을 힘없이 내줬습니다. 전일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내년 금리 인하 횟수를 줄이겠다고 발언한 충격이 이날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외국인과 기관의 동반 매도로 전체 시장이 크게 하락했는데요. 이 와중에도 일부 조선주들은 강세 행진을 벌이다 지수 낙폭이 커진 영향으로 상승폭을 줄여 눈길을 끌었습니다.
최근 조선주들은 시장의 하락과는 상관없다는 듯 상승세를 그리고 있습니다. HD현대중공업은 장중 분할 상장 후 신고가를 새로 쓰는 중이고, HD한국조선해양도 10년 사이 최고가에 올라섰습니다. HD현대미포조선 역시 금융위기 직전의 역사적 호황 때 주가에 조금씩 다가서는 중입니다.
이들 외에도 조선 기자재 업체들 역시 등락을 반복하면서도 시장과는 동떨어진 상승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출 대표주인 자동차는 힘을 쓰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지난여름 30만원에 다가섰던 현대차는 시장의 약세에 묻혀 20만원 초반까지 밀려난 상태고, 기아의 처지도 다르지 않습니다.
조선과 자동차 모두 철강재를 사용하는 제조업이면서 수출 비중이 높다는 공통점이 있어 고환율의 수혜를 누릴 것으로 예상됐지만 주가는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자동차, 비용이 고환율 효과 상쇄
여기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경기침체로 인한 소비둔화 우려입니다. 자동차는 경기소비재라서 전 세계 소비자들의 주머니 사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만, 조선사들은 전 세계 물동량 전망치를 고려해 배를 주문하는 해운사들의 영향권 아래에 있기 때문입니다.
경기침체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어서 글로벌 경기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런데 미국과 중국 등 현대차, 기아 등에게 가장 큰 시장에서 자동차 수요가 감소할 거란 전망이 많습니다. 또한 트럼프의 귀환으로 관세가 대폭 상승할 경우 그로 인한 부담도 걱정입니다. 현대차와 기아, 이들에게 부품을 공급하는 주요 업체들도 미국에 생산공장이 있지만 미국에서 판매하는 자동차 전량을 현지생산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원달러환율이 10원 오르면 국내 자동차 업계의 매출은 4000억원가량 증가합니다. 하지만 이중 일부는 원자재 비용 상승을 충당하는 데 빠져나가고 현지 마케팅 비용도 상쇄해야 합니다.
오히려 고환율이 장기화할 경우 원자재 수입가격 상승과 투자비 증가 등으로 부담이 커질 수 있어 업체들도 긴장하는 분위기입니다.
조선과 자동차는 매출 인식 방식과 환율 변동에 대한 노출도 차이 등으로 인해 주가도 확연히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21일 부산 영도구 HJ중공업 영도조선소에서 7700TEU급 LNG 이중연료 컨테이너선 'HMM OCEAN'에 대한 명명식이 열리고 있는 모습.(사진=HJ중공업)
돈 몰아서 받을 시기에 고환율 ‘해피’
조선사들은 매출을 인식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선박은 선주로부터 주문을 받은 뒤 건조해서 인도하는 데까지 짧으면 1년 미만, 길게는 1년8개월 정도 긴 시간이 소요됩니다. 선종별로는 선박에 구조물이 많은 대형 LNG운반선 등이 건조 기간이 긴 편입니다.
선박 건조 비용도 이 기간 동안 나눠서 받습니다. 아파트 분양 대금처럼 계약금과 중도금, 잔금으로 나눠 지급합니다.
구체적으로 RG(금융기관 보증) 발급 후 배를 설계해 강재를 절단하고, 각 블록별로 조립해 탑재해서, 마지막 시운전 후 선주에게 인도하기까지 선박 제조 과정을 5단계로 구분합니다. 이 5단계마다 선박 대금을 20%씩 받는 것이 스탠다드 방식이고, 앞 네 단계에서 10%씩 받다가 마지막 배를 인도할 때 남은 60%를 한꺼번에 받는 것이 헤비테일 방식입니다. 반대로 초기에 많이 내고 나중에 적게 내는 계약을 탑테일 방식이라고 합니다.
아파트 분양을 받은 사람들이 돈 내는 걸 최대한 미루다가 나중에 대출을 이용해 잔금을 납입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선주들도 요즘은 헤비테일 방식을 선호합니다. 다만 초반에 많이 내느냐, 나중에 몰아서 내느냐에 따라 선박 가격은 다릅니다. 할인율 때문입니다. 선분양 아파트보다 후분양이 비싼 것처럼 같은 선박을 건조해도 헤비테일 계약이 더 비쌉니다.
국내 조선업체에 주문이 밀려들기 시작한 것이 2년쯤 됐고, 대부분 헤비테일 계약이었기 때문에 1~2년이 지나 선박 인도가 본격화되면서 매출도 불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기에 고환율까지 맞물린 덕분에 실적이 크게 증가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물론 환율 변동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달러를 미리 은행에 매도(선물환 매도)하는 등 일정 수준에서 환헤지를 합니다. 다만 전액 헤지하는 것이 아니고 상황에 따라 금액과 비중도 조절하기 때문에 환율 상승으로 인한 수혜는 발생합니다.
이처럼 자동차와 조선 모두 고환율의 수혜를 보는 것은 사실이지만, 상대적으로 환율 상승에 대한 노출도가 조선 쪽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조선주가 자동차주 머리 위를 나는 배경엔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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