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민영 기자] 금융당국을 비롯한 여야가 부실·불법 대부업체가 민생을 망가뜨린다고 보고 대부업체의 자격 요건을 강화하기 위한 법안을 추진합니다. 그런데 법제처가 여러 법안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대부업 유지 조건을 완화하는 내용을 포함시켜 정책에 초를 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법제처, 대부업 등록 취소 요건 완화
18일 정치권과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는 전날 대부업 취소 요건을 낮춘 '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대부업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법제처가 기업들의 자격 요건 등을 일괄적으로 손보면서 대부업체도 포함한 것입니다.
개정안은 환경적·외부적 요인 등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인 등록 취소 사유를 개선해 영업자의 경영상 부담을 완화한다는 취지로 마련됐습니다. 6개월 이상 영업실적이 없다는 사유로 대부업자 또는 대부중개업자의 등록을 취소하려는 경우에는 영업실적이 없는 '정당한 사유'가 있는지 고려하도록 한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하지만 이는 현재 금융당국은 물론 여야가 추진하는 입법과 결이 다르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여야는 현재 대부업체의 자격 요건을 강화하는 쪽으로 정책방향을 잡고 있습니다.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8월 대부업을 하기 위한 자기자본 요건을 상향하고, 대부업 취급 자격인 제도를 신설해 이 자격인을 각 영업소마다 두자는 내용의 대부업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자기자본 요건이 너무 낮아 대부업을 수행할 만한 충분한 자격이 없는 곳도 대부업을 영위하기 때문에 금융 소비자의 피해 우려가 크다는 이유입니다.
불법 대부업체와 등록 대부업체 간 명의를 사고 파는 문제를 막자는 취지의 법안도 발의됐습니다. 현재 대부업자 등록을 위한 문턱이 지나치게 낮아, 불법 대부업체들이 등록 대부업체 명의를 돈을 주고 거래한 후 범죄에 악용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금융 소비자들은 등록 대부업체라고 믿고 방문했다가 불법 대부업체에게 피해를 당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쉽게 명의를 사고팔지 못하도록 자기자본 요건을 상향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박성준 민주당 의원은 최소 자기자본 요건을 1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상향하고, 이를 유지하지 못할 경우 등록취소 사유로 규정하자는 내용의 대부업법 개정안을 최근 발의했습니다. 등록 대부업체가 불법 사채에 악용되는 사례를 막기 위해 등록 요건을 강화하자는 취지입니다.
정부가 대부업 등록 취소 요건을 완화한 법안을 발의하면서 대부업 등록 취소 요건이 완화된다면 오히려 부실 대부업만 양산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서울정부청사 내 금융위. (사진=뉴시스)
금융위도 대부업 등록 강화 추진
금융위원회도 여야의 생각과 다르지 않습니다. 금융위는 지난달 관계부처와 합동해 대부업 제도를 대대적으로 개편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영세 대부업의 난립과 불법 영업 등에 따른 금융 소비자들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지자체 대부업자에 대한 등록요건 강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입니다.
지자체 대부업자의 자기자본 요건을 개인 사업자는 기존 1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법인 사업자는 50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대폭 상향하고 자기자본 유지의무도 부과하는 내용이 핵심입니다.
이미 금융위 등록 대부업자는 총자산을 자기자본의 10배 이내로 제한 중이지만, 지자체 등록 대부업자는 제한이 없기 때문에 규제 형평성 제고 필요성이 꾸준히 대두됐습니다. 지자체 등록이 자칫 규제회피 목적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금융위 등록 회피를 위해 대부업자 1명이 자산 100억원 미만의 다수 지자체 대부업체로 쪼개 운영하는 이른바 '쪼개기 등록'도 문제로 지목됩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대부업체 대표가 타 대부업체 임직원으로 겸직하는 것을 제한하는 방안이 필요한 실정입니다.
이는 실질적인 영업을 하는 곳과 영업 실적이 없는 곳이 가려낼 수 있는 장치이기도 한데, 만약 법제처가 정당한 사유를 이유로 등록 요건 취소 완화 정책을 펼친다면 충분히 악용될 여지가 있는 부분입니다.
법제처 과거에도 엇박자 해프닝, 이번에도?
일각에선 법제처의 법 개정 방향이 금융위와 일부 상충되는 부분이 있는 만큼, 다시 개정될 가능성도 거론됩니다.
해프닝으로 끝나긴 했지만, 과거에도 대부업법을 둘러싼 금융위와 법제처 간 엇박자로 시장에 혼선을 초래한 적이 있습니다.
지난 2009년 시행된 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에는 '은행 연체이자를 약정이자의 1.3배를 초과해 받을 수 없고, 나머지 금융회사들은 연체 가산금리를 12%포인트 이상 받을 수 없다'는 내용이 담긴 적이 있었습니다. 기존에는 연체이자율이 연 25%를 웃돌 경우에만 약정이자의 1.3배를 받아 왔지만, 시행령 개정으로 차주가 장기연체를 해도 높은 연체이자를 부과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법제처의 실수에서 비롯된 해프닝으로 밝혀졌습니다. 법제처가 법 개정 과정에서 '여신금융기관이 연 25%를 초과하여 연체이자율을 받는 경우에 한하여'라고 제한한 부분을 삭제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여신금융기관이 연 25%를 초과하여 연체이자율을 받는 경우에 한하여'라는 문구를 법령에 삽입해 다시 개정에 나선 바 있습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대부업체의 자기자본 요건을 개선하자는 입법 활동이 꾸준하다. 지난해 경기도 공정특별사법경찰단이 압수한 불법 전단지 등 압수품을 쏟는 모습. (사진=뉴시스)
윤민영 기자 min0@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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