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무더기 '폐기'…최악 치닫는 정치
방송4법·25만원법·노란봉투법 재표결 끝 부결
여당 추천 인권위원 선출안 부결에 일시 정회
2024-09-26 18:09:46 2024-09-26 18:09:46
[뉴스토마토 김진양·유지웅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재의요구권) 사용으로 국회로 돌아온 법안들이 또 폐기됐습니다. 21대 국회에서부터 이어진 '쟁점 법안 야당 주도 통과-거부권-국회 재표결-법안 폐기-재발의'의 악순환을 22대 국회에서도 되풀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국정감사와 내년도 예산안 심사 등을 앞두고 있는 국회가 더욱 극심한 여야 대치 국면으로 진입할 것이란 우려가 커집니다. 
 
26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여당 추천 몫인 한석훈 국가인권위원 선출안이 부결되자 국민의힘 의원들이 여야 합의안인데 부결했다며 항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회는 26일 본회의를 열고 방송4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방송통신위원회법 개정안), 전 국민 25만원 지원법(2024년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위한 특별조치법안 재의의 건),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안)의 재의결을 진행했으나, 모두 부결됐습니다. 
 
이들 법안은 지난 7~8월 국회 본회의에 상정돼 여당의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 끝에 야당 주도로 통과가 됐지만, 윤 대통령의 즉각적인 거부권 사용으로 국회로 되돌아온 것인데요.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이 재표결에서 통과하려면 재적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표를 던져야 합니다. 야당 국회의원 전원(192명)이 출석했다고 가정했을 때, 국민의힘에서 최소 8표의 이탈표가 나와야 가결될 수 있는 겁니다. 
 
이날 재표결에서 방송 4법 중 방통위법 개정안은 재적의원 299명, 찬성 189표, 반대 108표, 무효 2표로, 방송법은 찬성 189표, 반대 107표, 무효 3표, 방문진법은 찬성 188표, 반대 109표, 기권 1표, 무효 1표로, EBS법은 찬성 188표, 반대 108표, 무효 3표로 최종 부결됐습니다. 전 국민 25만원 지원법은 재적의원 299명 중 찬성 184표, 반대 111표, 무효 4표로 노란봉투법은 재적의원 299명에 찬성 183표, 반대 113표, 기권 1표, 무효 1표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사기꾼' 공방에 고성 오가기도
 
거부권 법안의 폐기로 여야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질 전망입니다. 실제 이날 본회의에서는 여야 간 상호 불신이 충분히 높다는 것이 확인됐는데요. 거부권 법안 재표결에 앞서 진행된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 선출안 표결에서 야당 추천의 이숙진 위원 선출안은 가결됐으나, 여당 추천의 한석훈 위원 선출안은 부결된 것입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강하게 반발했고, 추경호 원내대표가 "인사에 관해서는 합의를 하고 존중을 하는 것이 관행이고 그렇게 처리하기로 했는데, (민주당) 의원총회 결과에 대해 일언반구 말도 안 해줬다"며 정회를 요구해 회의가 잠시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30여분 만에 재개된 회의에서 배준영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는 "국회 본회의장에서 사기를 당할 줄은 몰랐다"며 "이런 국회에서 의정 활동을 더 할 수 있겠느냐. 박성준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와 의사일정을 상세히 협의했고, 양당이 인권위원을 선출하는 것을 합의했는데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고 규탄했습니다. 
 
이에 박성준 원내수석부대표는 "지금 대한민국에 누가 사기를 당했나. 국민이 사기를 당했다. 윤석열정권에 대해 온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고 일침했습니다. 박 원내수석의 발언이 이어지는 동안 국민의힘 의원들은 의석에서 "사기꾼"을 연호하며 격렬한 항의를 이어갔고, 박 원내수석은 "역사적으로 가장 큰 문제는 자기가 사기꾼일 때 남한테 사기꾼이라 외치는 것이다. 부끄럽게 생각하라"고 응수했습니다. 민주당 의원 일부도 "김건희가 사기꾼이다", "이게 사지면 김건희 주가조작은 어떻게 할 거냐" 등의 고함으로 동조하기도 했습니다. 
 
"난맥상 중심에 윤석열·이재명"
 
이처럼 양당의 신경전이 거센 가운데 전문가들은 양당의 대치 국면이 당분간 크게 변화하지 않을 것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이재묵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출구가 보이지 않는 여야 대치 국면에 대해 "여의도 안에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짚었습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는 건데요. 이 교수는 "오늘 돌아온 3개 법안 외에도 김건희 여사 의혹, 이재명 사법리스크, 의료개혁 문제 등이 남아있다"며 "용산이나 이재명 체제와 관련된 것들이 대부분인데, 이를 풀어야 정치 난맥상이 풀린다"고 설명했습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나름 애를 쓰고 있지만 그의 역할은 제한적이란 분석도 덧붙였습니다. 이 교수는 "한 대표가 뭔가 역할을 하려 해도 용산에서 그 길을 터주지 않고 있다"며 "한 대표가 전권을 위임받아 와서 이재명 대표와 협상을 할 수 있다면 뭐가 좀 풀릴 수 있겠지만, 지금은 전권을 위임받지도 못할뿐더러, 만약 뭔가 성과를 내더라도 용산에서 인정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최진봉 성공회대학교 교수 역시 "지금 상황에서 대치 국면은 그대로 갈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는데요. 그러면서도 그는 "가능성이 희박하긴 하지만 '김건희·채상병 특검법'이 변수가 될 수 있다"며 "친한(친한동훈)계에서 찬성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다음 달 16일 치러지는 재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질 경우, 가장 큰 리스크인 김건희 여사를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 최 교수의 시각입니다. 
  
김진양·유지웅 기자 jinyang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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