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대마불사와 레버리지
2024-06-25 15:02:01 2024-06-25 15:02:01
국내 재벌집단에서 오래된 대마불사의 성공 논리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듯 보입니다. 그걸 더 잘할 수 있는 중국이란 후발주자가 너무 커졌기 때문입니다. 대마불사를 고집한다면 중국에 먹혀 퇴출될 운명을 맞이할 것이 예견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빠르게 성장했던 비결은 대마불사였습니다. 중국이 무섭게 성장한 비결도 대마불사입니다. 이는 국가가 강제할수록 더 쉽고 빠르게 이뤄집니다. 중국이 세계 태양광을 집어삼킬 때 저가생산, 물량공세로 먼저 경쟁사를 밀어냈습니다. 그런 다음 중국 정부가 나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로컬기업을 퇴출시켰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대마가 세계를 석권했습니다. 박정희정부 당시 대마불사로 성공신화를 썼던 이유가 설명됩니다. 그걸 중국은 공산당과 시진핑 통치 아래 더욱 강력한 실행력으로 추진하는 중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제 대마불사 논리를 버려야 하지만 저항이 심합니다. 기업은 이익 추구가 본질이고 중국에 위협받아도 재벌집단은 여전히 적지 않은 돈을 벌어들이기 때문입니다. 구태여 뼈를 깎는 혁신이 불필요하다고 여깁니다. 중국에 시장을 뺏기면 재벌집단은 내부거래를 늘려 이익을 보호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중소기업부터 먼저 퇴출됩니다. 생태계가 무너지면 재벌집단도 같은 운명을 맞이하겠지만 당장은 안주하게 됩니다.
 
삼성 노조는 HBM 주도권을 SK에 뺏긴 것이 경영진의 판단 착오 탓이었다고 주장합니다. 직원들은 HBM 기술 필요성을 설득했으나 경영진이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입장입니다. 노조 말대로면, 경영진은 기술보다 현재의 이익을 더 중시한 듯 보입니다. 기존의 수익구조에 집중하는 것이 새로운 기술 투자 비용을 감수하는 것보다 수월하니까요. 하지만 이는 역사적으로 선두기업이 곧잘 빠졌던 함정입니다.
 
HBM에선 성공했지만 SK 역시 비슷한 함정이 보입니다. SK온은 LG에 막대한 특허침해 배상금을 지불하면서 캐즘의 덫에 빠져 적자가 누적되고 있습니다. 배터리 사업 진출은 SK 내 기존 석유화학과 에너지 사업 등에서 비관련 다각화 또는 관련 다각화였습니다. 그에 따른 시너지를 노렸지만, 최근 SK E&S와 SK이노베이션간 합병설도 불거져 그룹사가 SK온 살리기에 매달리는 모양새입니다.
 
재벌집단이 고속성장한 전략은 주로 인수합병(M&A)이었습니다. M&A는 합병 시너지를 고려하는 게 원칙입니다. 여기서 중요하게 분석되는 부분은 EPS(주당순이익)입니다. M&A를 위해 투입된 현금이나 부채, 혹은 주식교환 등을 통해 지불한 뒤 배당가능 이익은 얼마가 될지 계산합니다. 분석에서 향후 기술 개발을 통해 얻을 이익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그보다 비용구조를 개선시키고 시장을 독과점화해 확보할 이익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러니 M&A 중심의 대마불사 전략도 기술보다 이익에 가까운 특성을 띱니다.
 
투자 전략의 바이블 공식인 레버리지로 따져봐도 대마불사는 함정이 노출됩니다. 레버리지는 원문 의미로 지렛대 효과입니다. 지렛대는 한쪽에 싣는 무게가 클수록 효과가 극대화 됩니다. 문어발식이라면 당연히 레버리지가 작아집니다. 대마불사가 막다른 길에 이른 지금 전략도 바꿔야 합니다. 이제는 전문화된 사업 기술에 인적, 물적 자원을 집중시켜 혁신하기 위한 구조적 변화가 필요한 때입니다.
 
이재영 뉴스토마토 선임기자 leealiv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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