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철학자 어거스트 꽁트는 과학적인 태도를 중시하고, 경험과 실증적 검증을 통한 지식을 강조한 인물이었다. 그는 인간이 얻을 수 없는 지식의 예로 별의 화학적 성분을 꼽은 바 있다. 별에 가서 그것이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우리의 경험 밖에 있는 일이므로, 그의 말이 아주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었다. 과학이란 경험할 수 있는 세계에 대한 지식의 체계이므로, 별의 화학적 성분과 같은 질문이 어떻게 과학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는 흥미로운 주제이기도 하다.
꽁트의 활동과 비슷한 시기에 발전한 분광학은 머지않아 그의 주장을 흑역사로 만들었다. 분광학은 빛의 스펙트럼을 분석하여 물질의 구성 요소와 특성을 연구한다. 가령, 19세기 후반 헬륨의 발견은 이런 분광학의 발전 덕분이었다. 태양 빛이 태양 대기를 통과할 때, 그 대기 속의 원소들은 특정 파장의 빛을 흡수한다. 이렇게 흡수된 파장은 스펙트럼에서 어두운 선으로 나타난다. 과학자들은 이를 분석하여 새로운 원소의 존재를 인식하고, 태양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헬리오스에서 따와 헬륨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원소가 실제로 지구에 존재함을 확인한 것은 나중의 일이었으니, 인간은 헬륨의 존재를 매우 간접적인 방식으로 알아낸 셈이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열화상 카메라는 건물 출입구와 같은 곳에서 사람들의 체온을 측정하는 데 널리 사용되었다. 열화상 카메라는 적외선 센서를 이용해 물체 표면에서 방출되는 적외선을 감지하며, 이 정보는 계산을 통해 온도로 변환된다. 물체가 온도에 따라 다른 파장의 적외선을 방출한다는 사실을 이용한다. 이렇듯 체온처럼 직접 측정할 수 있는 것이라도, 이를 간접적인 방식으로 측정하는 다른 방법은 현실에서 매우 유용하고 때로는 필수적이기도 하다.
우리의 세계에 대한 많은 과학적 지식, 예를 들어, 지구의 크기, 태양까지의 거리, 원자의 크기 등은 언뜻 보기에 우리의 경험적 세계 밖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의 타고난 감각은 매우 제한적이다. 근대 과학의 성공이란 감각을 확장하여 측정할 수 있는 것을 넓혀 온 과정이며, 직접적인 경험 밖의 세계를 간접적인 방식으로 경험의 세계로 끌어들여 온 과정이다. 그리고 이러한 많은 성공 사례에는 숨어 있는 공통적인 패턴이 있다.
우리는 수를 통해 정량화된 과학 개념을 표현한다. 그리고 서로 다른 정량화된 개념들 사이의 관계를 수식으로 표현한다. 이러한 수식을 조작하여, 측정할 수 있는 것으로부터 직접 측정하기 어려우나 궁극적으로 알고 싶은 것을 끌어낸다. 예를 들어, 비례식이나 방정식은 이미 알고 있는 정보로부터 알고 싶지만 직접 알기 어려운 것을, 계산을 통해 얻게 해준다. 열화상 카메라가 적외선 파장을 이용해 온도를 알아내는 것도 바로 이러한 도식을 따른다. 여기서 수학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감각을 확장하고, 경험 밖의 세상에 닿게 해주는 도구로 작동한다.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를 외친 일화도 우리는 이러한 관점에서 다시 바라볼 수 있다. 그의 왕은 새로운 왕관이 순금인지 의심하며, 아르키메데스에게 이를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순금인지의 여부는 직접적인 방식으로 알기가 어렵다. 목욕을 하던 중, 아르키메데스는 몸이 물에 잠길 때 물이 넘쳐나는 것을 보고, 흘러넘친 물의 부피를 이용해 물체의 밀도를 측정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즉, 왕관을 물에 담가 넘치는 물의 부피를 측정하면, 밀도는 계산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는 인류가 계산으로 감각을 확장한 상징적인 이야기이다.
이철희 고등과학원 수학난제연구센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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