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반도체 기업 TSMC는 전 세계 파운드리(위탁생산) 시장 점유율 60%가 넘는 독보적 1위 기업입니다. 한국의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조차 파운드리 부문에서 10% 초반 대에 머물며 TSMC와의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TSMC는 우리에게 넘어야 할 산이자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TSMC의 성공비결에 대해 여러 가지 분석이 나옵니다. 우선 TSMC가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모토 덕분에 경쟁사 대비 우위를 점하게 됐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파운드리에만 집중해 고객사들이 믿고 맡길 제품을 만들어내는 구조를 구축했다는 얘기입니다.
무엇보다 반도체 업계에선 TSMC의 성공비결로 '협력'을 가장 중요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TSMC가 OSAT(반도체 패키지·테스트 아웃소싱 업체)인 ASE와 협력하며 경쟁력을 갖춰온 게 대만의 반도체 생태계 구축을 가능케 했다는 겁니다. 여기에 대만 정부를 주축으로 민·관·정이 하나 돼 국가 차원에서 전략 산업인 반도체 경쟁력을 지켰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결국은 '협업'이다. TSMC가 주축이 돼 대만의 협력업체를 육성하다보니, 전 세계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반도체 업체 1·2위를 지닌 위상을 차지하게 됐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러한 협력 구조가 없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관계자도 "대만은 TSMC를 필두로 소재와 장비 등 여러 관련 기업을 육성했고, 대·중소 협력을 바탕으로 선두기업은 물론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이 더욱 탄탄해졌다. 반면 우리나라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 대기업만 잘나가지, 대기업과 협력하는 탄탄한 중견 기업이 전무하다"며 "대·중소 협력 보다는 하청을 부리는 듯한 마인드로는 반도체 업계에서 상생 협력은 요원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대규모 반도체 기업이 장비업체 등 중소기업을 동반자로 보지 않고, 하청을 준다는 시혜적인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K-반도체 기업의 경쟁력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었습니다.
이 관계자는 "TSMC는 엔지니어가 생산라인에 들어가서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엔지니어와 장비업체가 만날 토론하면서 '어떻게 하면 대책이 나올지, 방향은 어떤지'에 대해 매번 고민하면서 같이 간다는 개념이 강하다. 해법이 나올 때까지 죽어라 엔지니어들이 매달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첫째도, 둘째도 기술"이라며 삼성만의 '초격차 기술'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해왔습니다. 치열한 반도체 패권 현장을 거치며 나온 총수의 입에서 나온 '기술'이라는 단어는 필부의 단상으로는 그 무게를 가늠하기조차 어렵고 무겁습니다.
전 세계가 반도체 생태계를 둘러싸고 총성 없는 전쟁에 빠르게 돌입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이 강조하는 '초격차 기술'은 중소기업과의 상생 협력이 필수 토대가 돼야 할 것입니다. 다만 모든 책임을 대기업의 탓으로 돌리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은 상생의 기본 원칙에 어긋난다는 점에서 중소 협력 업체들의 인적·기술적 개선 방안이 선행돼야 함이 당연합니다. 장기적으로는 촘촘한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하고, 대·중소 간 협력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도록 하는 열린 사고가 기업 문화로 정착돼야 할 것입니다.
임유진 재계팀장 limyang8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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