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자리에서 인사를 나눈 분이 문득 이런 말을 해온다. ‘실은 제가 친한 지인 중에 대한항공 승무원이 있어요. 그래서 사무장님 이야기를 했더니, 사무장님이 회사에 막대한 피해만 안겨준 인물이자, 원래 조직 부적응자였다는 취지로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 궁금했어요. 과연 그 내부에서 사무장님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하고요.’ 아마도 같은 처지에 놓여 있었을 사람들이 어째서 이런 평가를 하는지 궁금한 것으로 보였다. 이 말에 어떻게 답을 해야 하나 잠시 고민을 했다.
수도 없이 대중의 주목을 끌었던 괴롭힘 사건들로 인하여 이미 우리 사회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으리라 생각하지만, 괴롭힘 이슈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진지하게 ’괴롭힘의 구조‘에 대해 생각해 본다. 조직 내에서 발생한 괴롭힘 사건이 대중에게 알려지면 많은 경우, '죽을 결심이면 그 집단에서 벗어나면 될 것이지 죽기는 왜 죽어'라는 말을 쉽게 한다. 또 '괴롭힘에서 벗어날 자유의지는 그 정도 성인들이면 다 가지고 있는 것 아닌가'하고 반문도 한다.
그러나 이는 ’괴롭힘의 구조‘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나온 생각이다. 예를 들어 나의 경험을 이야기하자면, 대한항공이라는 회사, 그 중에 승무원이라는 직종이 가지는 특수성에 대한 이해가 먼저 있어야 한다. 한 명을 팀장으로 지정하고, 20명 내외 승무원이 한 팀이 되어 1년 혹은 2년간 근무하게 되는 소집단 구조인데, 이로 인해 다수는 쉬운 통제의 대상이 된다. 이 팀제도라는 구조에서 조직원은 이탈이 절대 불가하다. 비행 업무의 특성상 비행기나 체류 호텔 등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오랜 시간을 강제로 함께 보내게 된다. 이로 인해 그 조직 안에서의 인간관계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형성된다.
개인의 다양한 선택이 불가능한 환경이 조성되면, 명확한 계급적 구조를 가지고 있는 집단의 경우 강력한 권력이 작동한다. 인간의 속성은 항상 그 집단만의 질서와 규칙을 자발적으로 만들려는 본능을 작동시킨다. 이런 소규모 통제 집단이 정의롭지 않게 움직이게 되고, 그 안에 악함이 첨가되면 그 집단은 가해자, 피해자 그리고 방조자라는 세 그룹만이 존재하게 된다.
직장 내 괴롭힘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나의 경우는 조직의 계획적 의도에 따른 수행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어떤 특별한 의도가 없이 이루어지는 일방적 찍어내기식 괴롭힘도 있다. 그 안에서 신적 권능을 가진 놀이를 하려는 나쁜 마음이 시초가 되는 경우가 다반수이다. 얼마 전 한국가스공사에서 발생한 직장 내 괴롭힘에서는 상사의 개·고양이 밥을 주게 하고, 퇴근 후에는 저수지에서 새우를 잡으라고 지시하는 일이 있었다. 가해자는 왜 이런 행위를 했을까. 신과 같은 전능감을 느끼려한것이 아닐까. 이런 쾌감에 취하게 되면 이는 강력한 도파민이 된다. 이는 결국 뒤틀린 힘의 소유에 대한 욕구가 되는 것이다.
‘창진씨는 승무원이나 계속했으면 먹고 사는 문제 걱정은 안하셨을 텐데 왜 회사를 나와서.’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면 진작 나도 여느 괴롭힘 피해자들처럼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가능성이 크다. 땅콩회항 후 6년간을 회사를 다니며 반복적으로 다수 앞에서의 모멸과 수치에 내몰렸고, 또 의미 없고 반복적인 업무 지시가 수시로 있었다. 가령 ‘면세품 개수 세기나 탄산음료 개수 세기’ 등이 있다. 이런 행위는 어쩌면 계획된 탄압보다는 더 한 쾌감을 얻었는지 모른다.
다시 돌아가서, 한때 동료였던 사람들이자 유사한 피해를 경험했을 가능성이 큰 이들이 오히려 더 가해자 편에서 선 말들을 할까. 핵심은 이러하다. 나쁜 질서가 지배하는 집단이라 하더라도 다수의 조직원들은 그 규칙을 규칙으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안정감을 갖는다. 그런데 그 집단이 이미 수긍하거나 받아들인 질서를 위태롭게 만드는 변수가 생기면 구성원들은 통상의 이성이 배제된 채로 그 집단만의 룰에 맞춘 관점으로 사안을 분석한다. 결국 이는 괴롭힘의 피해자가 질서를 따르지 않은 것이니, 가해자나 방관자 입장에선는 피해자가 조직을 망친 나쁜놈인 것이다.
우리가 왜 ‘직장 내 괴롭힘’을 집단을 망치는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더 정교하게 들여다 봐야하는지를 말하고 싶다. 우리가 감정적 소모가 크다는 이유로 엄혹한 현실을 외면하게 되면 그 작은 외면이 더 잔인하고 더 심각한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박창진 바른선거시민모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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