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공정한 규제
2024-05-13 06:00:00 2024-05-13 06:00:00
22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온라인 플랫폼 규제 관련 법안이 다시 힘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와 별개로 공정거래위원회는 '플랫폼 공정거래 촉진법' 제정을 추진 중이기도 하죠. 공정위가 내세우는 법안에는 △자사우대 △끼워팔기 △최혜 대우 요구 △멀티호밍 제한(경쟁 플랫폼 이용 방해) 등을 막기 위한 내용이 담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단어들만 놓고 보면 하나하나 중요한 사안처럼 보입니다. 플랫폼에 입점한 소상공인·중소기업은 당연히 공정한 경쟁을 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비단 온라인 플랫폼에만 해당하는 행위일까요?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오프라인의 대형마트를 떠올려보죠. 진열대 앞자리를 차지한 PB 상품(유통업체 독자개발 상품)들 속에서 내가 원하는 브랜드 상품을 찾느라 한참을 헤맨 경험, 마트에 가본 분들이라면 한번쯤은 다들 있으실 겁니다. '자사우대' 때문에 벌어지는 일입니다. '끼워팔기'는 또 어떤가요. 공정위의 취지는 '온라인 플랫폼의 서비스와 다른 상품 또는 서비스를 함께 거래하도록 강제하는 것을 막자'는 것인데, 이 강제의 기준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가령 통신사 유무선 결합상품을 한번 떠올려봅시다. 전화, 인터넷에 IPTV·OTT 등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결합이라는 이름의 끼워팔기를 강요받는 데 이미 익숙한 채 살고 있습니다. 이밖에도 이것과 저것을 함께 사야 할인 해주는 경우를 다 따지자면 한도 끝도 없겠죠. 끼워팔기라는 말 자체가 부정적인 어감을 지녀서 그렇지, 끼워사면 혜택이 제공되는 경우가 사실 대부분입니다. 따지고 보면 고객 편의를 도모하는 측면이 있기도 하고요. 
 
이밖에 '최혜 대우 요구'도 마찬가지예요. 최혜 대우 요구가 오프라인 세상에선 이미 암묵적 룰처럼 자리잡고 있는 경우가 너무도 많습니다. 하도급을 둘러싼 원사업자와 수급사업자, 오프라인 유통업체와 납품업체 등의 관계 속에서 암암리에 벌어지는 일들이 바로 최혜 대우 요구입니다. 이런 경우들까지 다 아울러서 규제를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면, 최혜 대우 요구 규제는 온라인 플랫폼들의 원성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사용자들이 여러 플랫폼을 이용하는 것을 막는 '멀티호밍 제한'의 경우 정도만 규제의 설득력이 있어보입니다.
 
'플랫폼은 독점이고, 독점은 나쁘다'는 시각에만 매몰되지 말고 좀 더 거시적으로 바라볼 필요도 있습니다. 최근 경제안보라는 말이 화두입니다. 일본의 라인야후 사태에서 보듯 자국 기업 보호주의가 글로벌 플랫폼 업계에서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는 상황인데요. 이러한 상황 속 굳이 온라인 플랫폼 법을 추진한다고 한다면, 최소한 국내외 모든 사업자에 법 적용이 동일하게 이뤄진다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해외 사업자는 안 지켜도 되는 법이라면 형평성에 어긋날 뿐더러 경제안보도 담보할 수 없으니까요. 
 
자본주의의 시장은 패자에게 냉정합니다. 국경도 없이 무한경쟁이 벌어지는 온라인 플랫폼 시장은 더욱 그렇습니다. 토종 플랫폼이 경쟁력을 잃으면 손해는 비단 해당 플랫폼만 보는 것이 아닙니다. 플랫폼이라는 한 배를 탄 소상공인과 중소기업도 새로운 매출 창구, 새로운 터전을 자칫하다간 아예 잃을 수도 있습니다. 저 멀리 바다 건너 어딘가에 따로 존재하는 것만 같았던 글로벌 공룡 플랫폼들이 어느덧 국내 시장을 호시탐탐 넘보고 있는 시기, 플랫폼 규제가 신중하게 이뤄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냉정하게 보면 제 아무리 법을 국내외 기업에 공정하게 적용한다 한들 사실 국내 플랫폼들은 이미 불리한 입장입니다. 구글 유튜브, 아마존이나 알리·테무·쉬인에 한국 시장은 극히 일부분이지만, 국내 플랫폼에겐 거의 전부이기 때문이죠. 거래의 공정성은 분명 지켜내야 할 가치이지만, 규제의 적용이 정말 공정하게 이뤄지는 것인지, 또 규제가 미처 생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킬 가능성은 없는지 따져봐야 합니다. 한국경제의 현재도 냉정히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혁신이란 기치를 올려 괄목할 만한 성공을 이뤄내는 새로운 토종 기업을 좀처럼 찾기 힘든 시대죠. 그나마 이 가운데 나름의 경쟁력을 키워온 게 한국형 플랫폼들인데, 오로지 이들만을 겨냥해 과도한 요구를 하는 일은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요. 필요한 규제마저 아예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규제보다 시급한 건 어쩌면 국내외 플랫폼 생태계에 대한 정확한 이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김나볏 중기·IT부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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