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사진=연합뉴스)
"나는 한국이 우리를 제대로(properly) 대우하길 바란다. 우리는 위태로운 위치에 4만명(실제는 2만8500명)의 군인이 있다. 왜 우리가 다른 사람을 방어하느냐"
미국의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달 시사주간지 <타임> 인터뷰에서 "주한미군을 철수할 것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트럼프는 "왜 우리가 다른 사람을 방어하느냐"고 묻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에 이어 엘브리지 콜비 전 미국 국방부 전략·전력 개발 담당 부차관보도 "미국의 주된 문제가 아닌 북한을 해결하기 위해 더 이상 한반도에 미군을 인질로 붙잡아둬서는 안 된다"며 미군이 한국에 주둔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2기에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유력 후보 중 한 명인 콜비 전 차관보가 '인질'이라는 표현으로, 트럼프의 의중을 더 분명하게 대변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들의 인식대로 주한미군은 북한의 남침에 방패막이로 내세운 '인질'인 것일까?
지난 2018년 1월 19일, 한국 관련 현안을 논의하기 위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트럼프는 거두절미하고 말했다. "우리가 한반도에서 엄청난 병력을 주둔시켜서 얻는 게 뭐지?"…트럼프는 미국이 (로스앤젤레스 도달에 38분 걸리는) 북한의 미사일(ICBM) 발사를 탐지할 때 특별접근프로그램으로 얻을 수 있는-알래스카에서 15분 걸리던 것을 7초 만에 탐지할 수 있게 해주는-이점에 관해 설명을 들은 적이 있었다.…"우리는 제3차 세계대전을 막기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국방장관) 매티스가 말했다.…매티스는 할 말이 더 있었다. "우리는 2만8500명의 병력을 전진 배치함으로써 본토를 방어할 능력을 확보하고 있습니다"…(조지프 던포드) 합참의장은 또 미국을 지키기 위해 어차피 해야 할 활동에 다른 나라들이 해마다 보조금을 지불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 ICBM 발사 탐지, 알래스카에서는 15분 걸려-주한미군은 7초
이 비화는 '워터게이트 특종'으로 유명한 밥 우드워드가 2019년에 출간한 '공포:백악관의 트럼프'(Fear:Trump in the White House, 429~432쪽)에서 공개한 내용이다.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한국 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THAAD) 배치에 대해 "우리는 한국을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그게 우리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한국을 돕고 있는 겁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위 책 21쪽)
주한미군에 대한 이 같은 미국의 인식은 최근에 나온 것이 아니다.
"한국군이 북한군보다 군사적으로 우세하고 주한미군을 철수해도 군사적 큰 위협이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한반도는 4대국의 이익이 교차하는 지역으로, 주한미군 주둔은 정치적인 중요성이 있으며 1940년대와 1950년대와는 판이하다"
1975년 2월 미국 하원군사위원회에서, 주한미군의 계속 주둔 이유를 묻는 질문에 제임스 슐레진저 당시 국방장관이 한 대답이다. CIA국장에서 국방장관으로 이동한 그는 "급격한 철수는 중대한 정치적 문제를 야기할 것이며 미군 주둔은 한국을 비롯한 일본, 중공 등 동 지역의 균형 유지에 필요"하다고도 했다. (외교부, 2006년 외교문서 공개
"주한미군은 미국 세계전략 일환")
이 문서에는 미 상원 더몬드·스콧트 의원이 75년 2월 상원 군사위에 보고한 '아태지역의 병력과 정책' 보고서에서 "미 2사단을 태평양군사령부의 비상 대기병력으로 지명하고, 때때로 동 사단 및 사단 병력 일부를 훈련을 위해 타 태평양지역에 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한 내용도 있다. 주한미군이 한반도 붙박이가 아니라 전략기동군이 돼 타 지역으로 파견되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가 50년 전인 1975년에 이미 거론된 것이다.
지난 3월 4일, 한미 연합훈련인 ‘자유의 방패(FS·프리덤실드)’ 연습 중에 경기도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에서 아파치 헬기가 이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세계 최대 해외 미군기지 평택 '캠프 험프리스', 대중국 견제 전초기지로 부각 돼
2021년에 완성된 평택 주한미군 기지(캠프 험프리스)는 현재 주한미군의 존재 의미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용산 주한미군사령부와, 비무장지대(DMZ) 인근인 경기도 의정부·동두천 미 2사단 등을 옮겨놓은, 미군의 세계 최대 해외 기지다. 서해 항구까지 갖춘 평택의 위치상, 북한의 남침 때 미군의 자동개입을 이끌어내는 '인계철선' 역할은 거의 사라지고 명실공히 대중국 견제 전초기지라는 의미가 더 부각되고 있다.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를 이어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세현 전 장관이 "미국으로서는 제일 서쪽(서해 평택)에, 중국에 대한 최전방에 주한미군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주일미군, 그리고 괌과 하와이에 있는 미군이 안전한 것이고, 결국 태평양 전체가 미국 바다가 될 수 있는 것"이라며 "노무현 정부 때 미국이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동의한 것도, 주한미군의 역할을 중국을 견제하는 최전방사령부로 규정했기 때문“이라고 짚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 전 장관은 "주한미군이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국가이익을 지키기 위한 역할과 북한의 남침 억지 역할의 비율이 몇 대 몇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이처럼 주한미군이 '인질'이라는 생각은, 무지에 따른 '착각'이거나 그 실체를 알면서도 방위비 분담금 확대 등등의 정치적 목적을 갖고 '고집'을 부리는 것이라고 봐야 옳다.
주한미군의 역할은 냉전 때와 상당히 달라졌지만, 우리 국민은 이에 대해 낯선 것도 사실이다. 이념적인 이유 등으로, '오로지 대북용'으로만 말해온 역대 정부에게도 적지않은 책임이 있다.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hb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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