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의사 집단이 길게 다투고 있다. 의정 갈등에서 사람들이 잘 모르는 문제점이 한 가지 있다. 정부와 의사가 두 달이 넘도록 다투면서도 갈등 당사자가 머리를 맞대고 대화하는 모습을 거의 볼 수 없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와 민간 분야가 갈등하는 일은 이상한 게 아니라, 일상이라고 봐야 할 정도다. 정치학자인 에이프릴 카터 전 영국 옥스포드대 교수는 잦은 사회 갈등과 집회 시위 때문에 민주주의가 흔들리는 게 아니라 그것이 민주주의 발전을 보완해준다고 주장했다. 권위주의 국가에서 불만이 있더라도 표출할 수 없음을 생각해보면 그 이치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과 참모들은 갈등 관리를 국정 주요 과제로 중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노무현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일할 때다. 고속철도 대구 구간에서 천성산 터널을 공사하는데 지율 스님이 도롱뇽 생태계 파괴를 막고자 목숨을 걸고 단식했다. 문 민정수석은 그 스님을 쫓아다니면서 대화를 청했다. 노무현 청와대는 민정수석실에 갈등 관리 전담 비서관을 두었다.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부도 갈등 관리를 중시했다.
지금 의정 갈등에서도 마찬가지다. 책임 있는 인사들이 공식, 비공식을 가리지 말고 무조건 자주 만나야 한다. 밥을 먹고 소주잔도 기울이시라. 의견이 다르면 못 만나는 게 아니다. 의견이 다르니 만나야 한다. 대화하면 불신을 줄일 수 있다.
갈등이 깊은데 양쪽이 대화하지 못하는 데 이유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한평생 검사만 해봤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비롯해 체질과 사고방식이 자신과 비슷한 검사, 판사 출신을 정권 요직에 기용해왔다. 검사는 직무 속성상 피의자를 포승에 묶어 끌어다 놓고 취조할 뿐, 민원 상대방과 대화해 본 바 없다. 아랫사람을 모아놓고 장광설 늘어놓기? 그것은 수평적인 대화라고 할 수 없다.
의사도 비슷한 이유로 대화에 미숙하다. 서울대 세브란스 삼성서울병원 등 환자가 몰리는 빅5 종합병원에 가보시라. 환자가 의사한테 증상을 호소하고 싶어도, 병원 시스템은 대화할 시간을 허용하지 않는다. 어떤 의사는 환자한테 반말한다. 환자는 아픈 게 죄인 줄 생각하고 꾹 참는다.
윤 대통령이 한 달쯤 전에 박단 전공의 비상대책위원장과 대통령실에서 만났다. 대통령실이 박 위원장과 대화를 희망한다고 발표하고, 다음날 대통령은 모든 일정을 비워 놓았다며 나를 찾아오라고 상대를 압박했다. 대화를 희망하면 제의해놓고 상대방 회신을 기다리는 게 보통 사람들 예의범절 아닌가. 두 사람이 만나고 나오자 임현택 의사협회 회장(당시 당선인 신분)은 “내부의 일부 적이 나를 더욱 힘들게 한다”며 만남에 견제구를 날렸다. 대통령과 의사단체 대표 모두가 대화에 미숙함을 드러냈다.
필자는 국방홍보원장으로 일할 때 군 장성급 인사를 많이 만났다. 예외는 있겠지만 많은 군인은 겸손하고 대화에 능했다. 대화하고 소통하지 못하면 군대를 지휘할 수 없는 시대가 됐고 군인들은 변화에 빠르게 적응했다.
선진 민주국가는 뭐가 좋은가. 대화를 통해 갈등을 풀고 합리적으로 의사결정을 한다는 게 장점이다. 우리는 대화 기술이 부족한 검사 출신 대통령과 의사 집단이, 문제는 벌려놓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 줄 몰라 쩔쩔매고 있다. 시민들이 오래오래 고통받고 있다.
박창식 전 국방홍보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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