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대파와 비트코인
2024-05-08 06:00:00 2024-05-08 06:00:00
대파는 지난 총선의 뜨거운 키워드였다. 대파 한 단에 875원이 합리적이라는 현실과 동떨어진 대통령의 발언은 가뜩이나 물가 상승으로 고통받고 있던 유권자들 사이에서 정부를 향한 분노를 촉발했다. 이 발언이 야기한 논란은 계속 확대되어, 대파는 하나의 정치적 상징이 되었고, 선관위는 선거 현장에 대파가 등장하는 문제까지 신경 써야 할 정도로 곤란함을 겪어야 했다. 전 세계적인 전방위적 물가 상승의 주요 원인으로는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각국 정부가 시행했던 경기 부양책이 지목되고 있다.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시중에 대규모로 푼 자금이, 모두에게 청구서를 내밀고 있다고 할 것이다.
 
한편, 지난 4월 20일 비트코인의 ‘반감’이 진행됐다. 비트코인의 총발행량은 2100만개로 제한되어 있으며, 소위 채굴이라 불리는 과정을 통해서만 유통량이 증가하게 된다. 비트코인의 반감이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채굴되는 비트코인의 양이 절반으로 감소하는 것을 말하는데, 대략 4년마다 발생한다. 현재까지 대략 1970만개가 생성된 비트코인은, 이제는 대략 10분에 3.125개, 하루에 약 450개 정도가 신규로 생성되어 기존 유통량에 더해지게 된다. 이는 이전의 하루 약 900개의 절반이다.
 
비트코인은 사용자들 사이의 거래 내역을 기록하는 장부를 일정한 간격으로 업데이트한다. 대략 10분 간격으로 장부에 새로운 페이지가 더해지는데, 채굴이란 바로 이 과정을 일컫는 말이다. 새로운 거래 내역을 모아 장부의 다음 페이지를 먼저 적어내 제출하는 채굴자는 비트코인을 보상으로 받는다. 다만 새 페이지에는 거래 내역 이외에, 해당 페이지에 들어맞는 큰 숫자를 하나 더 찾아 적어내는 일이 필요하다. 매번 달라지는 이 숫자를 찾으려면 그저 많은 계산을 해보는 것 이외의 다른 방법이 없다. 결과적으로 비트코인의 생성은 예정된 일정대로 일어나며, 에너지라는 비용 없이 임의로 일어날 수 없다.
 
2008년 금융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에 대응하여 미국은 양적완화로 불리는 정책을 통해 시중에 막대한 양의 돈을 공급했다. 정부에 큰돈이 필요할 때, 연준은 그 돈을 정부의 계좌에 넣어줄 수 있다. 여기서 연준이 필요한 돈을 직접 ‘벌’ 필요는 없다. 연준은 정부에 제공하는 자금의 대가로 정부의 상환 약속, 즉 국채를 받고 자산을 늘린다. 이런 식으로 연준의 자산 규모는 2008년 약 0.9조 달러에서 2014년에는 4.5조 달러로 증가했으며, 이는 2022년 4월에는 거의 9조 달러에 육박할 정도로 급속히 커졌다.
 
종종 돈을 찍어내는 것으로 묘사되는 이런 돈의 창조는 실제로는 돈을 찍어내는 일조차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다. 중앙은행이 더 많은 돈을 풀어 물가가 상승하면, 같은 금액으로는 이전보다 더 적은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게 된다.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돈의 실질 가치는 점점 더 희석된다. 정부의 빚을 통한 화폐 생성은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일어나며, 인플레이션의 방식으로 모두에게 비용을 부과한다.
 
해마다 증가하는 미국 정부의 부채는 미국 달러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정부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세금을 인상하는 일은 어렵지만, 돈을 더 찍어내는 방식으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다가올 미래에 정치인들이 그 유혹을 외면할 이유가 과연 있을까? 대파 사태와 같은 인플레이션을 경험하며 법정화폐에 대한 불신이 늘어날 때, 진짜 돈, 좋은 돈이란 과연 어떠해야 하는지 묻는 사람들은 점점 많아질 것이다.
 
이철희 고등과학원 수학난제연구센터 연구원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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