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말과 글을 생각한다
2024-05-03 06:00:00 2024-05-03 06:00:00
얼마 전 국회의원 선거가 끝났다. 말과 글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민주주의의 수단이 말과 글이기 때문이다. 말과 글이 세상을 바꿔내는 위력을 새삼 되새기게 된다. 개인의 능력, 조직의 능력이 말과 글로 판가름 나는 시대에 두 가지의 상관관계, 본질과 방법에 대해 생각을 나눠본다.   
 
 어떤 사람은 ‘말로 풀어내면 술술 잘 나오는데 글로 쓰려면 머릿속이 하얘진다’라고 푸념한다. 말하기는 자신이 있는데 글쓰기는 자신 없다는 말이다. 말하기와 글쓰기는 전혀 다른 영역일까? 말하기와 글쓰기는 뜻과 정보를 전달하는 기능의 측면에선 차이가 없다. 그러나 전달 방법의 측면에선 큰 차이가 있다. 이 차이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말을 하듯 쉽게 글을 쓰지 못하고 있다. 
 
원론적으로 봤을 때 말을 잘하면 글도 잘 쓸 수밖에 없다. 다만 여기서 말을 잘한다는 의미를 명확하게 살펴봐야 한다. 말을 쉼 없이 이어가는 달변은 겉으로 보기엔 말을 잘하는 것으로 비친다. 그러나 달변은 말을 잘한다는 인상만 남길 뿐 청자에게 정확한 메시지를 주지 못한다. 발화된 말은 녹음을 하지 않는다면 다시 살펴보기 어렵기 때문에 그 내용의 정합성과 엄밀성을 가늠하기 어렵다. 이 약점을 틈타 근거와 논리에 맞지 않는 말을 쏟아내 청자의 얼을 빼고 견강부회, 아전인수의 주장을 주입하는 달변가들이 있다. 그들은 말을 소통이 아니라 살포의 수단으로 여긴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내용을 사리에 맞게, 정서에 맞게 잘 전달하는 것이다. 사리에 맞다는 것은 논리적 요건을 잘 갖춘 것으로 청자의 이성을 움직인다. 정서에 맞다는 것은 이야기 효과를 잘 살린 것으로 청자의 감성을 움직인다. 이런 말은 이성과 감성 두 측면에서 청자를 설득하고 공감하게 만든다. 결국 화자는 생각이 깊어야 하고 내용을 잘 벼려야 하며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상대방을 배려해야 한다. 
 
다만 이렇게 내용이 충실하게 준비된 상황에서도 전달 방식의 차이로 글쓰기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말하기는 화자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발화해도 무방하다. 청자의 반응을 살펴보면서 어떤 내용을 덧붙이거나 힘을 줄 수 있다. 어떤 설명이 청자에게 납득되지 않았다면 다른 설명으로 다시 시도한다. 
 
그렇다면 글쓰기는 어떨까? 글쓰기는 말하기처럼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적을 수 없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 가운데 글로 옮길 가치가 있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 어떤 것은 넣고 어떤 것은 빼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선택의 기준을 배우지 못했다. 선택의 기준은 무엇일까? 바로 핵심이다. 논리적 글쓰기든, 스토리텔링 글쓰기든 핵심이 들어가야 그 글은 생명력을 갖는다. 아무리 어휘가 풍부하고 문장이 화려하고 표현이 기발하다 해도 핵심이 빠졌다면 좀비 같은 글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핵심은 또 무엇일까? 실용글쓰기에선 용건과 근거•이유다. 글을 통해 전하려고 하는 결정의 내용, 판단의 내용이 용건이고 근거•이유는 그것을 뒷받침하는 사실, 사례, 논리, 인용, 비유 등이다. 비실용글쓰기에선 메시지와 근거•이유다. 글을 통해 전하려고 하는 감동, 통찰, 결말이 메시지이고 근거•이유는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사실, 사례, 인용, 비유 등이다. 
 
선거는 끝났지만 말과 글의 성찬은 끝나지 않았다. 사리와 정서에 맞고 핵심이 분명한 말과 글을 만나고 싶다.  

백승권 비즈라이팅 강사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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