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직장인들에게 가장 부족한 능력은 무엇일까? 말과 글로 누군가를 설득하는 능력이다. 대기업, 중견기업, 공기업, 공공기관 구별할 것도 없이 어느 직장인이나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한계다. 직장인들이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학교 다닐 때 어느 수업 과목에서도 제대로 된 요약 수업을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요약은 한 편의 글을 집이라고 가정했을 때 커다란 집을 작은 미니어처로 만드는 과정이다. 요약을 하다 보면 그 글의 구조를 자연스럽게 알게 되고 구조를 통해 글을 쓴 사람이 독자를 설득하는 다양한 전략을 체득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요약을 외면하는 대신 독후감 숙제를 자주 내준다. 독후감은 말 그대로 책을 읽고 난 뒤 주관적인 자신의 느낌을 적어내면 된다. 요약처럼 굳이 글의 구조에 주목하지 않아도 무방하다. 독후감을 쓰기 위해 책을 제대로 읽을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이런 방식의 독서, 글쓰기 교육은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유해하기까지 하다. 책을 제대로 읽지 않아도 된다는 ‘도덕적 해이’의 틈새를 만든다. 눈앞에 놓인 사실을 파악하려는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머릿속에서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의견을 앞세우는 성향을 스며들게 한다.
사실 책을 많이 읽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제대로 읽는 것이다. 책 한 권을 제대로 요약할 수 있는 수준까지 깊게 파고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먼저 책의 구조부터 파악할 필요가 있다. 여행할 때 지도나 네비게이션을 챙기듯 책의 본문을 읽기 전에 목차를 상세하게 훑어봐야 한다. 머리말, 책 표지의 다양한 정보도 구조 파악에 도움이 된다.
구조가 머릿속에 자리 잡아야 지금 읽고 있는 대목이 전체 논리나 스토리의 흐름 가운데 어떤 부분에 해당하는가를 알 수 있다. 저자가 독자를 설득하기 위해 지금 어떤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이해하며 책을 읽을 수 있다. 책을 통해 저자의 지식, 경험, 통찰을 배우는 것도 좋지만 더 긴요한 것은 바로 이 설득의 전략이다.
한 달에 책 한 권 읽기도 힘든 현실의 직장인들에게 이런 주장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일 수 있다. 그래서 단기적인 방법으로 신문 칼럼 요약을 추천한다. 신문 칼럼은 원고지 10매 내외의 짧은 글이다. 그렇지만 그 안에 글 쓴 사람의 지식, 경험, 통찰이 압축돼 있다. 직장 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시사상식과 배경지식도 들어 있다.
칼럼을 그냥 자기 맘대로 요약하는 것이 아니다. 먼저 이 칼럼이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용건, 강조하는 주장을 찾아 한 줄로 적는다. 그다음 그것을 설득하는 근거를 찾아 서너 줄로 정리한다. 사실, 사례, 경험, 인용, 비유, 통계, 논리 등 다양한 근거를 만날 수 있다.
굳이 정답을 찾지 않아도 된다. 이 과정을 적어도 다섯 차례 이상 경험하면 이제껏 봤던 것과 전혀 다른 글의 세계를 만난다. 글 한 편을 한 손에 올려놓고 자신의 지문을 보듯 파악할 수 있다. 혼자 하는 것도 좋지만 뜻이 맞는 직장 동료나 자녀들과 하면 더 풍부하게 글의 전략을 이해할 수 있다. 처음엔 요약 내용이 서로 다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어떤 공통점을 향해 수렴된다는 사실도 만나게 된다.
이렇게 다른 차원의 세계를 만나면 독서도 한층 깊어지고 즐거워진다. 이전엔 의무감에 이끌렸다면 이젠 호기심에 사로잡혀 책장을 넘기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무엇보다 큰 소득은 상대를 설득하는 비밀을 알게 되는 것이다. 설득은 자신을 이롭게 하지만 상대도 기쁘게 한다. 불통의 시대에 요약을 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백승권 비즈라이팅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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