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글로벌 주식투자 플레이어의 대명사 사모펀드들이 기세 좋게 오르고 있습니다. 블랙스톤, 콜버그크레비스로버츠(KKR), 아폴로, 칼라일, 텍사스퍼시픽그룹(TPG) 등 글로벌 5대 사모펀드 운용사들은 미국 증시 활황을 바탕으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강력한 긴축이 진행된 지난해엔 투자를 줄였지만 금리 인하가 시작될 올해 다시 공격적인 투자에 나설지 주목됩니다.
지난주 미국 증시에서 블랙스톤(종목기호 BX), 콜버그크레비스로버츠(KKR), 아폴로(APO), 칼라일(CG), 텍사스퍼시픽그룹(TPG)은 모두 상승을 기록했습니다. 특히 아폴로와 KKR은 사상 최고가 행진을 이어가는 중입니다.
태영 투자로 단물 빤 KKR 어깨에 올라타기
이들 5개사는 글로벌 5대 사모펀드로 불립니다. 정확하게는 사모펀드 운용사입니다. 세계 곳곳에 투자하는 수많은 사모펀드를 운용 중입니다. TPG를 뺀 나머지를 4대 사모펀드로 칭하다가 2022년 1월에 TPG가 나스닥 시장에 상장하면서 5대 사모펀드가 됐습니다.
이들의 주가는 작년 말까지 기세 좋게 오르다가 올해 들어 소폭 조정하는 분위기였는데요. 지난주에 다시 상승을 시작했습니다.
2023년부터 지난주까지 주가 상승률은 S&P500지수나 나스닥지수 상승률을 넘어섭니다. 단 운용사 간 차이는 크게 벌어져 있습니다. KKR은 89%나 올랐는데 칼라일은 42% 상승률로 그 절반입니다.
주가만큼이나 지난해 이들의 성적도 들쑥날쑥합니다. 꽤 좋은 성적을 낸 곳도 있지만 TPG처럼 최근 4개 분기 합산으로 영업적자를 기록 중인 곳도 있습니다. 아폴로의 경우엔 2022년의 대규모 적자에서 흑자전환이 예상됩니다. 다시 말해 작년부터 올해까지의 주가 상승은 이들의 경영 성적에 비해 상당히 좋은 결과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올해 이들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이 크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글로벌 사모펀드들은 전 세계 각지에서 사업성이 좋아 보이는 기업을 인수하거나 지분투자를 하거나 빌딩을 사들이는 등 공격적인 투자를 합니다. 아무래도 자산시장의 출렁임에 따라 경영의 부침이 큰 편입니다. 지난해 미국 증시가 신고가 행진을 이어간 덕분에 이들의 주가도 날개를 달고 올랐습니다.
이들의 이름은 국내 투자자들에게도 익숙한데요. 지난해 TPG의 짐 콜터 회장이 방한해 국내 기관투자자들을 만난 것이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TPG 한국 오피스는 이학수 전 삼성전자 부회장의 아들인 이상훈 대표가 이끌고 있습니다.
KKR의 공동 대표인 스콧 뉴탈(Scott Nuttall)과 조셉 배(Joseph Bae) (사진=KKR 홈페이지)
특히 최근엔 KKR이 태영건설 워크아웃 과정에서 주목받았습니다. KKR의 사명은 3명의 공동창업자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이중 한 명이 사망했고 다른 2명도 고령으로 경영에서 물러났습니다. 현재 공동 CEO 중 한 사람이 한국계 조지프 배(배용범) 대표입니다.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방안엔 자회사 에코비트 매각이 담겨 있습니다. 에코비트는 매립과 폐기물 소각을 주력으로 하는 알짜 폐기물 처리업체로, 태영의 TSK코퍼레이션과 KKR 소유의 에코솔루션을 합병시켜 만든 회사입니다. 태영과 KKR이 5대 5로 나눠 지분을 보유 중이었습니다. KKR은 작년 1월 티와이홀딩스가 발행한 회사채 4000억원을 연 13% 이자로 인수했는데요. 금리가 높은데도 이때 티와이홀딩스의 에코비트 지분을 담보로 잡았습니다.
에코비트 지분 50%는 1조5000억원 가치로 평가된다는데, 태영건설에 디폴트가 발생하고 지주사인 티와이홀딩스도 이걸 갚지 못하면 KKR은 빌려준 돈 4000억원 대신 에코비트의 나머지 지분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태영으로서는 억울한 일이지만 KKR은 상당한 투자성과를 얻게 되는 겁니다. KKR은 이밖에도 작년 12월 태영인더스트리 지분을 2400억원에 매입했고, 평택싸이로 지분 37%도 600억원에 매입하는 등 쏠쏠한 투자를 이어가는 중입니다.
긴축 때문에 투자 축소…올해 투자 재개 기대
이처럼 글로벌 사모펀드들은 특정 기업을 통째로 사들이거나 의미 있는 수준으로 지분투자를 진행합니다. 투자 대상도 기업, 주식지분, 부동산, 실물자산 등을 가리지 않습니다. 일부 암호화폐에 대한 투자가 알려지기도 했는데 규모는 크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사모펀드는 짧게는 6개월 길게는 3~5년 기한을 잡고 투자를 시작합니다. 다만, 어디에 투자하는지 공개하지 않고 자금을 조성하는 블라인드펀드를 주로 운용한다는 점은 주의해야 합니다. 5대 사모펀드 중 하나의 주식을 매수한다는 것은 ‘깜깜이 투자’를 하는 운용사에 투자한다는 특성을 이해한다는 뜻입니다. 오랜 기간 쌓아온 과거의 레코드를 참고하면 믿을 수는 있습니다. 또 투자금이 많이 들어간 투자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 그해 성과도 크게 오르고 그러지 못하면 부진한 성적을 받아들어야 합니다. 시장 평균과는 동떨어진 변동성이 큰 투자이기에 남들이 웃을 때 그러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걸 각오해야 합니다.
지난달 15일 기준으로 글로벌 사모펀드들의 현금보유고가 사상 최고치인 2조5900억달러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 돈의 25%를 상위 25개사가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금리와 경기침체 우려 등으로 사모펀드들이 인수합병(M&A), 기업공개(IPO) 등에 참여하는 횟수를 크게 줄인 것으로 보입니다. 컨설팅업체 베인앤컴퍼니에 따르면, 2023년 M&A 거래 규모는 전년 대비 20% 감소한 30억달러로 추산됩니다. 10년래 가장 적었습니다. 이 중에서도 기업 간의 M&A는 14% 감소에 그쳤으나 사모펀드의 M&A가 35%나 급감했습니다. 지난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공격적인 긴축 정책으로 금리가 빠르게 오르면서 사모펀드들이 인수금융을 활용하기 어려운 환경이 됐던 것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올해 금리 하락이 본격화된다면 이들의 투자활동도 작년보다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주가 상승에 비해 만족스럽지 못했던 실적도 개선될 전망입니다. 올해 이들 사모펀드 운용사의 활약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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