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방학은 설렘 그 자체였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날 필요 없이 집에서 무한한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친구들과 만날 수 있는 학교도 좋았지만 엄마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난다는 것 역시 방학이 기다려지는 이유였습니다. 엄마와 같이 박물관, 미술관, 공연장 등을 다녔던 기억들은 아직도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엄마가 되고 보니 방학은 그다지 달가운 존재가 아닙니다. 되레 공포의 대상입니다. 아침밥 먹고 치우고 돌아서면 점심밥 할 시간이고 또 먹고 치우고 돌아서면 저녁밥 준비할 시간이 돌아옵니다. '돌밥'의 무한 굴레에 빠지며 '내일은 또 뭘 먹이나'의 고민에서 빠져나올 틈이 없습니다. 저 같은 워킹맘은 '돌밥지옥'에서는 다소 자유로울 수 있지만 아이 봐줄 사람을 찾는 것 자체가 난관입니다.
그나마 올해는 두 아이의 방학이 일주일에 불과해 부부의 연차와 '친정엄마 찬스'로 넘길 수 있었지만,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내년에는 어찌해야 할지 벌써부터 한숨이 앞섭니다. 아무리 연차를 아끼고 쥐어짠들 한 달을 채울 수는 없는 노릇이고 '할머니 보육'을 택하더라도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활동에 한계가 있어 결국엔 하루종일 유튜브만 보는 생활이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욕심 같아서는 다른 친구들처럼 뮤지컬도 보러 가고 좋아하는 유튜버가 운영하는 카페에도 가주고 싶지만 현실은 '학원 뺑뺑이'가 최선입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학교에서 돌봄교실을 운영하니 그곳에 맡기면 되지 않느냐고. 저도 그러면 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선배 엄마들의 조언은 다르더군요. 돌봄교실은 말할 것도 없고 그나마 프로그램이 갖춰진 방과 후 교실도 '뭔가를 배워오길 바라며 보내면 안 된다'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입니다.
그 외에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우리동네 키움센터'가 있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한 달 이용료가 몇 만원에 불과하고 방학 때에는 무려 점심도 챙겨 준다는 말에 희망을 걸고 있었지요. 맞벌이 가정의 신입생은 큰 어려움 없이 신청하면 들어갈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입소를 위해서는 입학식이 있는 3월보다 한참 전에 신청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부랴부랴 집에서 가장 가까운 센터에 문의를 해보니 신입생도 예외 없이 결원이 발생해야 들어갈 수 있다고 합니다. 결국 기댈 곳은 학원인가 봅니다.
어제 퇴근길, 뉴스를 살펴보다 보니 윤석열 대통령이 "저출산 대책을 다른 차원에서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는 헤드라인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다른 차원'이라는 게 뭔가 싶어 내용을 읽어보니 '내년부터는 늘봄학교로 돌봄과 교육을 국가가 확실하게 책임진다', '과도한 경쟁시스템이 원인이라면 이를 고치는 데 집중하겠다', '출산에 대한 인센티브가 확실한 저출산 대책이 되기 위해서는 실증적 분석을 통해 꼭 필요한 것을 찾겠다' 정도의 발언이 있었습니다.
애초에 큰 기대를 하지도 않았지만 역시나 실망스러웠습니다. 어떤 보도에서는 육아 가정에 주 2회 재택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도 하는데, '애를 데리고 일은 해봤나' 싶을 정도로 코웃음만 나옵니다. 물론 저출산 대책이라는 게 사회 시스템의 근본부터 뜯어고쳐야 하는 복잡한 문제라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어떤 것을 내놓더라도 찬사보다는 비판이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한 가지 바라는 것은, 실제로 육아를 해보는 입장에서, 영유아뿐 아니라 초등학생, 중고등학생 등 다양한 연령대의 자녀를 키우는 데 모두 도움이 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김진양 국회팀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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