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민영 기자] 검찰이 이정섭 전 수원지검 2차장 검사(대전고검 검사) 사건과 관련해 강제수사에 착수하면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대응에 시선이 집중됩니다.
공수처는 이 검사의 일부 혐의에 대해 수사할 권한이 있어 검찰에 사건 이첩 요구를 할 수 있지만, 검찰의 수사 상황을 지켜보겠다며 관망만 하고 있습니다. 법조계에서는 공수처의 이런 태도에 본분을 잊고 몸을 사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공수처 "검찰 수사 일단 지켜보겠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공수처는 지난 10일 민주당으로부터 이 검사의 비위 의혹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했습니다. 고발 내용은 주민등록법, 부정청탁법, 형법, 국가공무원법, 검찰청 공무원 행동강령 위반 혐의 등입니다. 공수처는 이 사건을 14일 공수처장 직속의 특별수사본부에 배당했습니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미 지난달 18일 이 검사를 대검찰청에 고발한 상태입니다. 사건을 배당 받은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는 지난 20일 이 검사가 다녀간 것으로 알려진 골프장과 리조트 등을 압수수색하며 본격적인 강제수사에 착수했습니다.
검사의 비위 의혹 사건이라는 점에서 공수처가 수사에 들어갈 법도 합니다. 그러나 공수처는 서울중앙지검이 강제수사에 착수했으므로 '지켜보겠다'는 입장입니다.
공수처는 고위공직자의 범죄를 수사하지만 직무 관련성이 있는 혐의만 들여다볼 수 있는데요. 고발장에 적시된 혐의 중 처가 소유의 골프장 직원을 채용할 때 범죄기록을 조회해 공무상 비밀을 누설한 혐의는 공수처가 마땅히 수사할 사안입니다.
원칙상 검찰에 이첩요구권 행사할 수 있어
따라서 원칙적으로는 이 검사의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가 파악되면 검찰은 공수처에 사건을 이첩해야 합니다. 공수처법 25조2항을 보면 다른 수사기관이 검사의 고위공직자 범죄 혐의를 발견한 경우 사건을 공수처에 이첩해야 한다고 나와있습니다.
또한 공수처는 검찰에 이첩요구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공수처법 24조1항에 따르면 공수처와 다른 수사기관의 범죄수사가 중복되면 공수처창은 수사의 진행 정도와 공정성 등을 따져 이첩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검찰이나 경찰 등 다른 수사기관에서 중복 수사를 하는 사건은 공수처장의 의지에 따라 이첩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검찰과 공수처는 범죄 인지에 대한 시각차가 있습니다.
공수처 관계자는 "검찰이 고위공직자의 범죄 혐의를 인지하고 이첩을 해야 한다"면서도 "공수처가 생각하는 인지는 상식적인 인지이고 검찰에서는 인지의 개념이 엄격해 범죄가 맞다고 판단하면 그때 인지한다"고 말했습니다.
윤석열 '24조 폐지 공약'에 눈치보기?
공수처는 이첩요청권을 절제해 사용할 것이라는 의지를 꾸준히 내비쳐왔습니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지난달 1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공수처가 권한이 막강하기 때문에 절제해서 행사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이 검사의 일부 혐의는 공수처에서 이첩할 순 있지만, 공수처장 판단에 따라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공수처 측은 "검찰 수사가 공정하지 않다고 보이진 않는다"라며 "나중에 여러가지 문제가 생기면 살펴보겠지만 검찰총장이 엄정하게 지시했으니 검찰의 수사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지난해 4월 공수처법 24조에 대해 "공수처의 우월적 지위로 수사기관 간 폐해를 유발하는 독소 조항이 분명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독소조항'이라며 검·경도 고위공직자 부패를 수사할 수 있도록 24조를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는데요. 당시 공수처는 24조가 '공수처 존재의 이유'라며 반발했지만,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검찰의 눈치를 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이첩요구권이라는 막강한 권한이 있음에도 사건 인지에 관한 무게는 검찰 판단이 중요하다"며 "공수처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 독립성이지만 사실상 다른 수사기관으로부터 인지 여부나 범죄가 될만한 단서를 넘겨 받지 않으면 제 역할을 하기 힘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민주당 의원들이 10일 오후 경기 과천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이정섭 검사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민영 기자 min0@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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