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를 속이고 사익편취를 조장하는 기업집단 행태는 보통 분할, 합병 과정에서 속내가 드러납니다. 과거 모 그룹이 분할, 합병을 시도할 때 의도가 불순해 보였는데 아니나다를까 지금 관련 기업 주주들이 주가 폭락에 땅을 치고 있습니다. 해당 그룹은 모종의 사태로 총수가 경영에서 물러나고 투명경영을 약속했었습니다. 분할, 합병은 이후 총수 공백기에 진행됐지만 여러모로 총수에게 유리했고 일반주주에게 불리해 보였습니다. 뻔한 결과가 예측됐음에도 회사는 사업적 명분을 내세워 주주들을 설득했습니다.
최근에 만난 한 대기업 관계자는 “요즘 그룹 인사는 계열사별 이사회에서 주관해 회장님 뜻대로 못한다”고 했습니다. 속으로 되묻게 되는 말이었습니다. 요즘 기업집단은 이사회경영을 강조하지만 시스템적으로 과거와 크게 달라진 게 없습니다. 매년 주총 때마다 이사 후보 적정성 논란이 반복됩니다. 로봇같은 의장과 주주간 맞장구 속에 거수기 주총도 여전합니다. 구조적으로는 과거와 다를 게 없는데 전과 다르다고 하면 믿기 어렵습니다.
전과 달라보이는 것은 사모펀드들이 지분투자해 주주제안을 많이 하는 것입니다. 여기도 주가 부양과 단기차익 목적이 의심됩니다. 작은 지분만 가진 펀드의 제안이 회사에 먹힐 리 만무하니까요. 역시나 제안은 묵살되지만 펀드도 계속 시도합니다. 경영권 이슈가 주가를 뻥튀기한다는 기대 때문일까요. 하지만 학습효과로 전처럼 증시도 쉽게 반응하지 않습니다. 펀드가 개입하는 게 지배구조상 투명해보이고 주가 부양은 경우에 따라 회사에도 유리하니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간혹 자사주를 사라고 제안하는 펀드는 이해관계를 의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사주 매입 후 소각 제안과 엄연히 다릅니다.
다시 돌아와 경영권이 곧 인사권입니다. 지배주주인 총수가 경영권을 확보하고 그 위력은 인사권으로 행사됩니다. 총수에게 인사권이 없다는 것은 지배주주 권리가 없다는 어불성설입니다. 이사회에 등재하지 않은 비등기임원 총수라도 의사결정권한을 가집니다. 이는 회장직에서 물러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전 회장이라도 지분은 그대로고 인사권은 살아 있습니다.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과 김범수 전 카카오 의장이 사법이슈에 걸렸습니다. 이들은 경영에서 떠났다지만 사정당국은 달리 봅니다. 과거에도 회장들의 사건 관여성이 법정에서 쟁점화된 사례가 많습니다. 모 기업 총수의 배임 재판에서 ‘회장님은 몰랐다’고 변호하던 장면들이 추억처럼 돋습니다.
코리아디스카운트를 짙게 만드는 사건들입니다. 진정 기업집단이 지배구조 투명성을 증명하려면 말로만 달라졌다 할 게 아닙니다. 기업 제도로 보여줘야 합니다. 일상에 바쁜 일반인은 몰라도 해외기관들을 속일 순 없습니다. 그러니 주주가치가 평가절하되고 외국인이 빠져나갑니다. 요즘같은 땐 유동성 위기마저 옵니다. 부적정한 보수체계, 거수기 주총과 이사회, 지배와 소유의 괴리 등 구조부터 손봐야 말 속에 설득력이 갖춰질 것입니다.
이재영 산업1부 선임기자 leealiv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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