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오정 아들이 사오정에게 물었다.
“아빠, 냉장고에 있는 사이다 마셔도 돼요?”
사오정이 TV를 보며 아무 대답이 없자 아들은 팔을 잡고 흔들며 다시 물었다.
그러자 사오정이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야. 귀찮게 굴지 말고 냉장고에 있는 사이다나 마셔.”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 유행했던 사오정 시리즈의 한 토막이다. 다른 사람의 말을 아예 듣지 않거나 제대로 듣지 않아 동문서답 식 대화를 주고받으며 생기는 해프닝이 사오정 시리즈의 기본 콘셉트다. 그 당시 매일 같이 새로운 사오정 시리즈가 쏟아지고 온갖 종류의 사오정 이야기가 사람들의 입길과 인터넷에 오르내리며 빠르게 퍼져나갔다.
주인공 사오정을 비롯해 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 같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화제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티키타카'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각자의 말이 허공에서 따로따로 논다.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만득이 시리즈, 최불암 시리즈도 비슷한 콘셉트의 유머들이다.
20년의 세월도 더 흐른 철 지난 사오정 시리즈가 최근 다시 살아나고 있다. 사람들의 기억 저편으로 멀어져간 사오정 시리즈를 부활시킨 사람들은 국정운영 세력이다. 이들은 국민의 정당한 문제 제기에 대해 말꼬리 잡기로 본질을 흐리고 있으며 책임전가, 동문서답, 견강부회로 철벽을 치고 있다.
최근 한 두 달 사이 떠오르는 키워드만 이야기해도 사례가 너무 많다. 후쿠시마 오염수, 대통령 부인 명품 쇼핑, 양평고속도로 설계변경,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내정, 오송 지하차도 침몰 사망, 새만금 잼버리 사태, 채 상병 사망,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 사면.
역사와 통일과 통합을 이야기해야 할 8.15 광복절 기념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공산전체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 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오정 시리즈는 세기말과 밀레니엄의 시작이라는 시대적 분위기와 맞물리면서 당시 사람들의 심리 상태를 유머 코드로 반영한 것이었다. 그 당시 한보 사태, 기아자동차 부도, 외국인 투자 회수 등으로 국민은 모두 불안하게 나라의 운명을 걱정했지만 청와대와 정부 여당은 “한국경제는 펀더멘탈이 건실하다”는 사오정 같은 답변만 되풀이했다.
결국 IMF 사태가 터지고 말았다. IMF로 한순간 삶의 터전이 허물어졌지만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고립과 단절의 문화를 만들었다. 결국 그 속에서 사람들은 지나친 자기중심적 경향에 빠질 수밖에 없었고 정상적인 소통이 불가능하다는 무력감으로부터 헤어 나오지 못했다. 사오정 시리즈는 그 자조적 표현이었다.
지난 5월까지 무역수지 적자는 15개월 가까이 계속됐다. 6월에 가까스로 흑자 전환에 성공했지만 8월에 다시 적자로 돌아서고 있다. 10개월째 수출은 감소 곡선을 그리고 있다. 최대 교역국이었던 중국 수출이 급감한 데 따른 것이다. 지난 2분기 일본의 GDP는 1.5% 증가한 데 반해 우리나라는 0.6% 성장에 그쳤다. IMF 이후 25년 만에 일본보다 낮은 성장률을 기록한 것이다.
사람들은 사오정 시리즈를 들으면 낄낄대고 웃겠지만 결코 사오정 시리즈의 시대로 되돌아가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진정 사람들의 눈빛에 어리는 불안감의 정체가 무엇인지, 국정운영 세력은 살펴보기 바란다.
백승권 비즈라이팅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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