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독립·호국·민주' 모두 기려야 '보훈'
2023-07-26 06:00:00 2023-07-26 06:00:00
때아닌 백선엽 장군 논란이 다시 불거졌습니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이달 초 "백 장군은 친일파가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쟁점화됐습니다. 급기야 보훈부는 24일 국립대전현충원 홈페이지에서 백 장군을 '친일반민족행위자'라고 적은 문구는 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단, 이를 삭제했습니다. 원래 해당 홈페이지에서 백 장군을 검색하면, 비고란에 '무공훈장(태극) 수여자'와 함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2009년)'이라는 문구가 표시됐었습니다. 보훈부의 조치는 백 장군을 전쟁 영웅으로만 추모하겠다는 의도입니다. 
 
백 장군 논란은 그의 이력에서 비롯됐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그는 만주에서 조국 독립을 위해 싸우던 조선계 항일단체를 소탕하는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했습니다. 광복 후엔 국군으로 변신, 6·25 전쟁에서 공을 세우고 훈장을 받았습니다. 백 장군을 비판하는 쪽에선 간도특설대 복무 이력을, 박 장관을 비롯해 백 장군을 찬양하는 이들은 6·25 전쟁에서의 공적에 더 무게를 둡니다. 
 
백 장군과 정반대의 삶을 산 인물도 있습니다. 약산 김원봉입니다. 그는 일제 강점기, 의열단을 이끌고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했습니다. 광복 후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월북, 북한정권 수립에 참여했습니다. 북한의 남침에 반대하지도 않았습니다. 전쟁 중엔 남파 간첩을 훈련시킨 걸로도 알려졌습니다. 약산에 관해선 서훈을 수여하는 게 옳으냐가 쟁점입니다. 보수 진영에선 약산이 독립운동을 한 건 맞지만 북한정권 수립에 기여한 점을 문제로 삼아 국가의 정통성, 보훈의 정신, 국가유공자의 정체성이 흔들린다고 주장합니다. 
 
두 사람에 대한 논란은 보훈의 정신과 국가유공자의 정체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오도에서 비롯된 걸로 봐야 합니다. 보훈의 사전적 의미는 '국가유공자의 애국정신을 기리고 국가가 유공자의 훈공에 보답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마치 우리는 '보훈=호국(護國)'인 걸로 여깁니다. 민족 분단 후 역대 정권들마다 '반공'을 국시로 삼았고, 교육을 통해 호국의 역사만 의도적으로 부각한 탓입니다. 보훈부의 이번 조치도 '어쨌든 호국'으로 귀결된 겁니다. 
 
대한민국 역사는 거룩하고 자랑스럽습니다. 조선이 망하고 일제 강점기를 지나 감격스러운 광복을 맞았습니다. 독재에 항거하고 시민의 힘으로 민주화를 쟁취했습니다. 세계 10대 경제대국, 한류라는 문화대국까지 올라섰습니다. 이 과정의 100년 역사는 단절된 게 아닙니다. 민중의 의지, 피·땀이 부단히 이어진 결과물입니다.
 
100년 역사에서 앞장서 희생한 분들이라면 모두 국가유공자입니다. 호국은 물론 숭앙해야 합니다. 동시에 광복을 이끈 '독립', 독재를 극복한 '민주'도 보훈의 개념과 범주에 포함시켜야 합니다. 보훈부 홈페이지에서 보훈의 대상에 명백히 독립유공자, 참전유공자, 5·18 민주유공자가 명시된 건 이런 맥락입니다.
 
보훈은 결국 '보답'을 내건다는 면에서 대상자 자격과 선정에 시비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보훈의 목적은 국론 분열이 아닙니다. 국가의 정통성을 확보하고 애국심을 함양하고 국가에 충성하는 문화를 형성하는 게 본질입니다. 그래서 보답엔 사회적 공론화와 합의가 필수입니다.
 
백 장군의 이력에 전쟁 영웅과 친일반민족행위자를 병기한 건 사회적 공론화의 결과물입니다. 백 장군의 대한 역사적 평가는 그대로 두고 호국 영웅으로서 추모하면 됩니다. 보훈부는 백 장군에 대한 논란을 자초, 국론 분열 행위를 중단해야 합니다. 진영논리만 결속시킬 뿐입니다. 그보다 그동안 보훈 대상에서 빠진 독립유공자와 민주유공자에 대한 적극적 발굴, 역사적 재평가가 시급합니다. 
 
최병호 탐사보도 1팀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