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정권은 처음 봅니다. 취임 초에 홍수로 지하방에 숨진 현장에서도, 이태원에서 생때같은 젊은 목숨이 참사당해도, 이번 물난리에도 대통령과 행정책임자들의 진솔한 사과는 없습니다. 하물며 책임까지 지겠습니까?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탄핵당한 상태임에도 사과도 사퇴도 없습니다. 어디서부터 이렇게 꼬인 것일까? 왜 기본이어야 할 ‘사과’가 그렇게 힘든 일일까요?
역대 대통령의 공식 사과를 살펴보면, 첫째 성수대교, 세월호 등 큰 재난사고, 둘째 대통령 자녀의 비리 등 친인척의 권력형 부정비리, 셋째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등 대통령 실책에 대해 사과해 왔습니다. 통계적으로 보면, 대체로 연 1회 정도로 총 5회 전후의 사과를 했습니다. 역대 대통령들은 재난 사고에 대해 대국민 담화를 통해 사과와 위로를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개인 간의 사과도 서양에 비해서 적은 편입니다. 사과는 잘못한 것을 인정하는 패배자의 자세라고 보는 동양권의 문화적 전통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적 영역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책임지는 자세는 사과로부터 출발합니다. 정치에서 종종 어떤 문제를 종결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만 ‘사과’를 하니까 오히려 정치적 반대자인 야당은 사과를 정치 공방의 새로운 시작으로 만들고 싶어 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책임지는 모습의 출발은 진솔한 ‘사과’입니다.
대개의 경우 대통령의 임기 말 사과는 피하고 싶은 ‘레임덕’의 시작점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은 대통령의 임기가 초반이기에 대통령의 사과가 치명적인 국정 혼란을 초래할 일도 없습니다. 왜 이렇게 사과가 인색해졌을까요? 잘못은 흔쾌히 인정하는 모습이 오히려 정치적 이득을 가져올 것이 분명할 것 같은데도 한 치의 잘못에 대한 인정이나 사과가 없습니다. 대통령은 무오류의 제왕이라는 생각하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일상의 사건 사고, 재난은 대통령의 통치행위와 관계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이번 우크라이나 방문 중에 “대통령이 달려가더라도 할 일이 없다”라는 대통령실 해명에서 유추되기도 합니다.
지금이라도 대통령의 사과가 필요합니다.
첫째 대국민 사과문에는 가정법 없이, 책임의 회피나 사건의 축소 없이, 진솔한 심정으로 사과해야 합니다. 둘째 앞으로 어떤 원칙으로 어떻게 처리할지를 분명하게 밝혀야 합니다. 책임 전가, 희생양 만들기, 불가피성 등을 강조하는 방어적 태도는 최악입니다. 모든 책임은 대통령에게서 끝난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재난을 처리하시기 바랍니다.
정치는 대의명분을 바탕으로 합니다. 대의명분은 '정의'로 취급되며 이런 정의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 정치권력은 그 정당성을 잃습니다. 대한민국은 유교적 전통에 따라 이러한 대의명분이 유독 강한 나라입니다. 사과는 곧 책임을 동반합니다. 책임이 두렵고 무서우면 책임 있는 공적 영역을 맡아서는 안 됩니다. 사과는 미안하고, 잘못을 돌아보겠다는 견해를 표현하는 말임과 동시에 내가 책임지겠다는 뜻을 동시에 포함합니다. 정치는 책임정치입니다. 정당정치의 기본은 책임정치입니다. 유권자는 정치인 개인에게도 책임을 묻지만, 정당 전체에게 책임을 묻습니다. 국민이 책임을 한꺼번에 묻는 심판 선거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여당은 심사숙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김두수 시대정신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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