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유진의 회장님 돋보기) 최태원 회장의 유별난 영어사랑
미국 유학 시절 학부 수업 추가로 들으며 영어 실력 키워
한미 경제인 간담회 때도 별도로 통역기 사용 안해…"한국말에 영어단어 섞어 쓰는 편"
듣는 사람들은 해석 어려움 토로하기도…"공식 자리서는 자제"
"SK 나머지 반은 여기에 투자하겠다"…AI에 관심, 선견지명 돋보여
2023-07-10 06:00:00 2023-07-10 06:00:00
 
[뉴스토마토 임유진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영어실력이 눈길을 끕니다. 영어 이름이 '토니'인 최 회장의 영어실력은 상당한데 주로 한국말에 영어 단어를 섞어 쓰는 편입니다. 
 
최 회장은 1983~1989년 미 시카고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과정을 수료하면서 영어 실력을 키웠다는 후문입니다. "유학 시절이 길었다"고 회상한 적도 있는데요. 경제학 기본기부터 다지기 위해 학부 수업까지 추가로 들으면서 영어 실력이 늘었다고 합니다. 1993년엔 미주법인인 SK아메리카의 이사 대우를 지내며 영어와 친숙한 환경에서 활동했습니다. 그래서인지 한미 비지니스 간담회가 열릴 때도 통역기를 별도로 착용하지 않은 모습이 종종 포착됩니다. 
 
최 회장은 특히 회의 석상에서 영어 단어를 많이 쓰는 편이라고 합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최 회장께서 주로 한국말에 영어 단어를 섞어 쓴다"며 "예를 들어 '리스판서블 인게이지먼트(Responsible Engagement)등 프리오리티(Priority)를 리포트(Report)하라' 이런 식으로 말을 하는 편"이라고 전했습니다. 
 
지난 2017년 최태원 SK그룹 회장(오른쪽)이 미국 워싱턴 미국 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한-미 비즈니스 서밋 주요 간담회에서 제이미 다이먼 JP 모건 회장의 발언을 듣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하지만 이런 영어식 표현은 이해가 쉽지 않은데요. 일례로 engage라는 단어만 봐도 우리말로 다양하게 해석되는 복잡한 단어입니다. 명사형인 engagement의 경우 △약혼 △약속, 업무 △교전 △관여, 참여 △고용 등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의미가 다섯 가지나 되는데다 의미 간 관련성조차 없는데요. 이 때문에 듣는 사람으로서는 최 회장이 사용하는 영어 단어 해석을 위해 발언 맥락을 정확히 들여다보고 나서야 이해할 수 있다는 푸념이 심심치 않게 들리곤 합니다. 
 
또다른 관계자는 "굳이 영어 단어를 안 써도 되는데 한국말에 영어를 섞어 쓰신다. 그러다보니 내용을 약간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또 "최 회장이 회의에서 영어 단어를 많이 쓰다 보니 덩달아 그 밑에 계신 분들도 영어 단어를 자주 쓰는 편"이라고 귀띔했습니다. 이어 "최 회장이 아무래도 미국 유학 시절 영향을 받지 않았겠느냐"며 "다만 공식 자리에서는 무분별한 영어 단어 사용은 자제하는 걸로 안다"고 전했습니다. 
 
최 회장은 지난해 SK그룹의 경영화두로 '빅 립(Big Reap·더 큰 수확)'을 제시한 바 있는데요. 당시 재계에선 무슨 뜻인지를 모르겠다는 반응이 적잖았습니다. △(특히 좋은 결과 등을) 거두다, 수확하다 △(농작물을) 수확하다, 거둬들이다라는 의미의 'reap'에 '크다'는 의미의 Big을 붙여 큰 수확을 내자는 것인데 영어 단어에는 없는 콩글리쉬(한국식 영어)를 만들어 낸 셈입니다. 
 
최 회장의 영어 단어 사용에 영향을 받은 탓인지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이 "SK이노베이션의 카본 투 그린(Carbon to Green) 전략을 보다 강력하게 추진해 넷제로(Net Zero)를 반드시 달성하고 빅립(Big Reap)을 위한 빅피쳐(Big Picture)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언급한 일화도 있습니다.
 
BBC뉴스와의 인터뷰 유튜브 캡처
 
영어 단어를 섞어 쓰는 것 뿐 아니라 최 회장의 영어실력은 상당한데요. 이는 가족 분위기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최 회장의 부모 모두 미국 유학파이기 때문입니다. 부친 고 최종현 회장은 미국 위스콘신대학교 화학과와 시카고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모친 고 박계희 여사는 미국 칼라마주대에서 미술을 전공했습니다. 
 
부모 모두 미국 유학파이다 보니 최 회장도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 부터 영어에 익숙한 환경에서 자랐을 것이란 얘깁니다. 여기에 미국 유학까지 하면서 원어민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게 됐다고 합니다.
 
최 회장은 올 초 윤석열 대통령과 경제인들이 모인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서 '한국의 밤' 개회사를 영어로 하며 "실제로 대통령님은 술을 좋아하시고, 영부인께서 대통령과 건배하는 걸 허락해주셨다"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7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화상 회의에서는 SK의 220억 달러(약 28조9000억원)규모의 미국 투자 계획을 영어로 설명했습니다. 이에 바이든 대통령이 '토니 땡큐'를 9번이나 외치며 친근감을 드러낸 바 있습니다. 최 회장은 지난 2021년 BBC뉴스 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댓글로 '아들보다 더 잘생겼다'는 글을 읽고 기분이 좋았다"고 웃은 뒤 "but it's joke"(하지만 농담이야)라며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며 영어실력을 드러낸 바 있습니다. 해당 인터뷰는 3분58분가량으로 전체 영어로 진행됐습니다.
 
사업적 선견지명도 눈에 띕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최 회장이 '앞으로 SK의 반은 텔레콤, 나머지 반은 AI(인공지능)에 쏟겠다'고 오래 전 사석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며 "이미 3년 전 내부에서 AI TF(태스크포스)팀을 꾸린 것으로 안다. 직원들 입장에선 '없는 일을 만들어서 시키네'라는 불평이 나왔을 만도 하지만 결국 최 회장의 시대를 앞선 AI에 대한 사업적 판단이 옳았던 셈"이라고 했습니다. 이어 "챗GPT시대에 SK가 발 빠른 대응을 할 수 있던 원동력은 최 회장의 사업적 통찰력 덕분"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임유진 기자 limyang8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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