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러시아는 언제부터 만났을까요? 시작은 고려시대부터지만, 정식 교류는 고종시절 대사관이 들어선 1884년 통상조약부터입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 처음 서방과 소련, 동유럽 국가들이 함께 참여했고, 이것이 계기가 돼 1990년 9월30일 한국과의 수교로 이어졌습니다.
서울 올림픽 당시 한국은 러시아어 통역자원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러시아어과가 있는 대학교 교수와 학생을 총동원해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는데, 이 일로 인해 러시아어과의 위상이 높아졌지요.
이후 1991년 소련이 붕괴되고 러시아 정세가 어려워졌습니다. 이때 한국 정부와 기업들은 러시아를 적극 도왔습니다. 1997년 모라토리움 사태로 외국기업과 자본이 빠져나가는 상황에서, 한국 기업은 의리를 지켰습니다.
지난 2019년 12월 한국 기업에서는 유일하게 팔도 제품 '도시락'이 러시아 저명상표로 등록됐습니다. 크렘린궁 앞 모스크바 강을 건너는 '큰 돌다리'라는 다리 전체에 LG의 광고 깃발이 걸리기도 했지요. 크렘린궁 뒤편, 역사 깊은 레닌 도서관 위에는 삼성의 대형 전광판이 걸렸습니다. 현대자동차는 일본 도요타와 러시아 1, 2위를 다투는 판매량을 달성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말미암아 대부분의 외국기업들이 철수했고, 아직 한국 기업 중 철수를 공식화한 곳은 없지만 위기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대기업 밴딩회사들의 입지도 줄어들었습니다. 현지 서비스 관리, 부품수리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데요. 이는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로 인해 수급에 어려움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공표만 하고 시행하지 않았던 외국기업 자본 국유화 방안이 지난 6월 크렘린궁에서 비밀리에 통과됐습니다. 작년부터 우려된 일들이 현실화 된 거죠. 우크라이나 전쟁 뒤에 러시아가 국유화시킨 기업은 아직 핀란드의 포텀사와 독일 유니퍼의 현지 자회사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러시아의 적대국 기업에 대해 국유화를 강제할 수 있는 방안이 만들어졌습니다.
아직 러시아에서 한국기업에 제재를 가하겠다는 공식성명은 없습니다. 하지만 서방에 대한 기업제재가 들어가는 순간, 러시아에서 철수한 한국기업들도 영향이 없을 거란 보장이 없습니다.
현재 한국 대기업들은 전쟁 이후 대부분 장비와 설비 등을 놓고 인력만 빠져나온 상황입니다. 인프라 자체를 러시아 정부에서 국유화하는 건 우리 기업들에겐 치명적인 손실로 이어질 겁니다.
여건이 어렵지만 오리온과 팔도, 롯데 등 우리 기업들은 지금도 활발히 러시아에서 영업하고 있습니다. 한-러 관계를 나쁘게만 내다볼 순 없지만, 전략 사업에 있어 제재 대상 품목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불확실성이 큽니다.
전시 상황에 때때로 바뀌는 대통령령, 긴급명령 등 법무적으로 변동사항이 많지만, 러시아는 아직 한국과의 관계를 놓지 않았습니다. 현재 뱃길로 일부 교역이 이뤄지는 상황을 미뤄보면, 기업들로서는 전략적 판단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
외교적인 문제는 정부에서 풀고, 법적인 불공정성에 대해선 현지에 정통한 전문가를 통해 풀어가야 합니다.
유준하 법무법인(유한) 바른 러시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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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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