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자라 키우는 김정은과 ‘대입 전문가’ 윤 대통령
2023-07-10 06:00:00 2023-07-10 17:45:53
북한 김정은은 너무나도 전지전능한 나머지 자라(鼈) 전문가이기도 한 모양이다. 그가 자라 공장을 시찰한 자리에서 책임자를 질책한 후 처형까지 했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워낙 신묘한 재능을 보여 왔다던 그가 자라를 키우는 비교적 사소한 일에서 예외일리 없다. 그런 김정은이 교시를 내렸는데도 자라가 제대로 자라지 못했다면, 그 공장 책임자가 불성실하고 무책임했음에 틀림없다! 전형적인 ‘북한식’ 결말이다.
 
물론 자라 키우는 법까지 완벽하게 아는 국가의 지도자는 북한 같은 곳에서나 존재한다고 여겨질 뿐, 실제로는 존재할 수 없다. 자라 키우는 법은 자라 전문가가 제일 잘 안다. 정치가란 애초에 자라 키우는 일까지 알고 있어야 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가 정치가로서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세상 모든 일을 다 아는 것은 아니며, 그가 내놓는 정책이나 지시가 아무리 훌륭해 보이더라도 자라의 타고난 생태에 맞지 않으면 아무 쓸모도 없기 때문이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수능시험 출제 방식을 문제 삼아 그 여파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사실 자라 키우는 일이 그런 것처럼, 수능시험 출제 역시 전문성이 필요한 영역이다. 현행 대입제도에서 수능시험의 목적, 즉 ‘변별력 있는 시험을 통한 공정한 서열화’를 잘 달성하기 위해서는 문제의 유형과 난이도가 아주 정밀하게 조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당국자들은 대통령의 발언이 ‘변별력 자체가 아니라 출제 범위를 문제 삼은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킬러문항’이라 지목된 문항이 정말 그런 것인지는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다.
 
이렇게 학생과 학부모, 교육현장에서 생겨난 혼란 자체가 대통령이 이 분야에 전문성이 없다는 방증인 것 같다. 이에 여당 정책위의장은 “대통령이 대입제도에 누구보다 해박한 전문가”라고, 교육부장관은 “자신이 대통령에게 배울 정도”라고 옹호한 바 있는데, 나는 이것이 “김정은은 자라도 잘 키울 줄 안다”는 말과 얼마나 다른지 잘 모르겠다. 김정은이 자라 키우는 일에 전문가일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는 것처럼, 윤 대통령 역시도 대입 제도의 전문가일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가 ‘조국 수사’를 통해 대입제도의 전문가가 되었다면, 지금 각 부처에 기용되는 검사 ‘출신들’ 역시도 그런 식으로 전문가가 되었단 말인가? 하지만 검사들 역시 특정 분야의 전문가일 뿐, 윤 대통령이 자임한 것처럼 모든 것의 전문가일 수는 없다.
 
이렇게 각 분야마다 각각의 전문가가 있어 그들에게 일이 맡겨져야 한다면, 도대체 대통령 혹은 정치가의 전문성은 무엇이냐는 물음이 남는다. 내 생각에 ‘특정한 목적을 잘 달성할 줄 아는 사람’이 각 분야의 전문가라면, 정치가는 그 목적 자체에 대해 문제 삼는 사람인 것 같다. 다시 수능을 예로 들면, 무엇을 위한 변별력과 서열화인지, 그리고 그 때 달성되는 공정함이란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잘 질문하는’ 사람이 바로 훌륭한 정치가라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사람들이 그토록 집착하는 ‘입시 지옥’과 같은 대입 경쟁을 좀 더 공정하게 만들라고 주문할 뿐, 특정 직업이나 특정 대학 출신이 아니어도 나름대로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사교육의 과열을 막자는 대통령의 애초 선의는 실은 바로 그러한 질문으로부터 시작해야만 실현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노경호 독일 본대학 철학박사과정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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