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언론’이라고 불리는 매체들이 있다. 종이신문, 인터넷신문, 방송, 통신을 다 포함해 우리나라에 등록된 언론사가 대략 4,500여 개인데, 아마도 상당수가 ‘보수적’일 것이다. 그러나 보수적 성향의 언론들이 모두 ‘보수언론’이라고 불리지는 않는다. 특별히 보수언론이라고 불리는 몇몇 매체가 따로 있다. 일부 신문과 그 신문이 운영하는 종편 방송들이다.
보수언론은 한국 사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진보 혹은 중도적 언론에 비해 여론형성에 미치는 영향이 큰 편이다. 여론조사에서 영향력 있는 언론사를 꼽으라면 보수 매체가 늘 상위에 오른다. 보수신문들은 발행부수에서도 진보적 혹은 중도적 신문들에 비해 월등히 앞선다. 보수신문들은 종편 방송까지 운영하고 있으니 여론 형성에 더 큰 영향을 끼친다. 방송 이외에도 주간지, 월간지, 어린이신문, 각종 전문지를 자매지로 발간하고 있다. 이런 종합적인 매체 파워 덕분에 여론을 주도하기까지 한다. 보수언론들은 자신들이 마음 먹으면 대통령도 바꿀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보수언론들은 역사도 길다. 2개 보수신문은 일제시대 창간되어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다. 긴 역사 만큼 저장된 기록과 이뤄낸 성과도 많다. 그동안 보수언론 출신 인사들은 정계·재계·관계 등 사회 곳곳에 진출해 고위직에서 활동해왔다. 보수언론 출신 국회의원, 기업인, 장관 등을 합치면 거대한 이권 카르텔을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보수언론은 유명 인사들이 인터뷰나 기고로 자기 얼굴·이름을 자주 드러내고 싶어하는 매체다. 약점 많은 정치인이 제일 무서워하고, 홍보담당자들이 제일 깍듯이 모시는 언론이다.
그런데 이렇게 국내 최고의 매체 파워를 가진 한국 보수언론들에게는 기이한 면이 있다. 언론의 생명과도 같은 신뢰도 측면에서는 항상 꼴찌다. 오보가 많고 극도로 편향적이기 때문이다. 최근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발표한 국내 언론매체 신뢰도 순위에서 보수신문과 그 자회사인 종편방송들이 ‘불신 1~2등’을 차지했다. 또 보수언론 소속 기자들은 향응·뇌물·접대나 비윤리적 취재로 구설수에 자주 오른다. 게다가 독자를 속이는 이른바 ‘기사형 광고’도 보수언론에 가장 많다. 무엇보다도,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보수주의’와는 거리가 먼 논조의 보도가 많다는 점에서 보수언론의 모습은 기이함을 넘어 기괴하기까지 하다. 법치, 자유, 민족, 시장경제 등 보수의 전통적 가치는 별로 보이지 않고 부정부패, 사대(事大)주의, 반(反)시장주의 기사를 버젓이 내고 있다.
그래서 보수언론에게는 ‘보수주의’와는 상관없는 여러 가지 이름이 붙여져 있다. ‘부자신문’, ‘족벌언론’, ‘조폭언론’이라는 별명이 그것이다. 반공주의 등 낡아빠진 것을 고집하는 경향 때문에 ‘수구언론’이란 이름으로도 불린다. 보수언론의 이런 기괴함은 적어도 두가지 문제를 야기한다. 첫째는 건강한 보수주의가 설 땅을 잃는다는 점이다. 보수의 가치와 품격을 높일 진짜 보수의 목소리는 듣기 힘들어졌다. 둘째, 영화 ‘기기괴괴 성형수’처럼 기괴한 가짜 보수가 얼굴을 고쳐 진보를 향해 혐오와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진보와 보수를 갈라치기하고 대립 구도를 만들어내는 것이 가짜 보수의 생존전략이다. 온 국민이 보수언론이 만들어낸 ‘진보 대 보수’ 혹은 ‘진영주의’ 프레임에 갇혀 국력을 낭비하고 있다. 보수언론의 이런 기괴함을 바로잡으려면 하루바삐 이들을 ‘보수언론’이라 부르지 말고 다른 올바른 이름을 찾아줘야 한다.
김성재 전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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