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K팝 산업이 세계로 확장하는 가운데 정·재계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되고 관련 정책들이 우후죽순 나오고 있으나, 문화상품에 인위적으로 관여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처럼 공장식으로 찍어내는 기존 K팝 시스템에 대한 비판은 어제 오늘이 아니지만, 상태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일단 K팝의 근본적인 문제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래 전부터 K팝에 대해 비판이 제기돼 온 부분은 '아티스트 주도성이 있는 음악인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폭죽처럼 빵빵 터지는 K팝 열풍 이면에 제작방식의 구조적 문제점들은 오히려 응달처럼 가려져 왔습니다. 지난해 뉴진스 'Cookie'의 성적인 가사 논란은 아티스트가 직접 곡을 쓰는 것이 아닌, 기획사의 지나친 관여와 내부 검토의 미흡, 국내외 창작자들에 대한 의존성 등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빚어낸 결과였습니다.
K팝 산업과 3~4년 전 협업을 한 경험이 있는 한 국내의 유명 작곡가는 "K팝 아이돌 음악의 작곡·작사 시스템이 마치 거대한 조립 공장과 같다"고 합니다. 파트별로 구획을 나누고 배분을 하는데, 보통 저명도가 있는 글로벌 작사가들이 콘셉트를 미리 정하고, 그것을 배분하는 과정에서 '이런 저런 영어 표현은 꼭 빼지 말아달라'는 요청을 한다고. "그러다보면, 제가 원하지도 않는 표현에 맞춰 가사를 덧붙여야 하는거죠. 그렇게 조립식으로 끼워진 음악들이 세상에 나오는 거고요."
서울 종로구 청와대 경내에서 세계 각국의 K팝 커버댄스 우승팀들이 플래시몹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이런 공장식 정체 불명 가사들이 내부 검수 절차를 제대로 밟지 않으면, 뉴진스의 'Cookie'처럼 사회적 논란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지난해 'Cookie'의 경우, 멤버 5인이 10대인 미성년자임에도 외국문화에선 '성적 암시'로 쓰이는 관용적 표현을 그대로 넣어 문제가 됐습니다.
방탄소년단(BTS)의 '버터' 역시 멜로디의 핵심 부분이 이중계약으로 몸살을 앓은 적이 있습니다. 2019년 루카 드보네어라는 네덜란드 DJ 겸 가수의 곡 'You Got Me Down'에 팔았던 멜로디를 2020년 하이브 측에 재차 팔아 '버터'를 만든 것인데, 법적 문제가 없다 치고 차트와 팬덤 중심의 세계적인 성과를 냈다 하더라도 향후 음악적인 재평가를 피해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일부 아이돌 그룹들이 기자회견이나 쇼케이스 현장을 열어 가보면, '기계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회사에서 정해준 '억지 세계관'을 그대로 구약성경처럼 읽을 뿐, 정작 이 음악이 왜 나오게 됐는지 설명을 듣기는 어렵습니다. 빅뱅이나 BTS 같은 팀들 같은 '아티스트형 아이돌'들도 있다고는 하나, K팝의 지속 가능한 흥행을 위해 밟아야 할 단계들이 많습니다. 외국 작곡가에 의존하기보단 K작곡의 선진화 또한 이뤄져야 하고, 조금 더 다양한 장르들이 수면 위로 올라와야 합니다. 보다 투명하고 내실 있는, 그래서 진정성이 느껴지는 음악 제작의 선순환 구조가 병행돼야 합니다.
서울 삼성동 코엑스 일대 외벽에 K팝 등 옥외광고물이 표출되고 있다. 코엑스 일대는 옥외광고와 디지털 콘텐츠를 결합해 '한국판 타임스퀘어' 같은 관광 명소로 조성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세계로 뻗어가는 K팝을 두고 정부와 기업, 언론의 이해관계가 맞부딪치는 오늘날 현상 또한 자연스럽지는 못합니다. 카카오가 최근 인수한 SM엔터테인먼트의 미래 전략 ‘SM 3.0’는 음반 발매와 공연의 대량생산에 나서겠다는 입장 발표로 ‘K팝의 공장화’ 선언이 아니냐는 우려가 있습니다. 지자체나 대기업은 '국내 최대 K팝 공연장', '세계 최초 K콘텐트 경험형 복합단지' 같은 '하드웨어' 위주의 대규모 투자에 집중하는 분위기입니다.
이러한 정부-기업 주도 프로젝트들이 우리 문화의 세계화와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란 기대감도 있긴 하지만, 겉만 그럴 듯하고 속은 비어있는 게 아니냐는 자성의 목소리로 이어집니다. 특히 학계를 중심으로는 과도하게 산업화하고 성공을 위한 사업전략으로 이를 공식처럼 활용하다 보면 '그렇지 않아도 공장식 제작인 K팝'이 더 큰 역풍에 직면할 것이란 지적이 나옵니다.
류웅재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서구의 수용자가 K팝이나 ‘오징어게임’, ‘기생충’ 등을 자발적으로 즐기고 이를 통해 다양한 문화적 실천을 수행하고 삶의 변화를 꾀하는 것은 모든 문화와 이의 수용 및 향유가 가지는 보편적인 측면 임에도, 이를 과도하게 산업화하고 성공을 위한 사업전략으로 이를 공식처럼 활용하려는 시도의 위험성은 경고돼야 한다”고 봅니다. 류웅재 교수는 “이를 통해 문화산업과 국가이미지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도모한다는 그럴듯한 명분은 해당 문화가 애초에 담지하던 창발성이나 실험성, 사회변화에 대한 혁신적 가능성을 왜곡하거나 변질시킬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K팝 음반들. 사진=뉴시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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