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복수의 시대
’입니다
. ‘복수
’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 복수의 사전적 의미는
‘원수를 갚음
’입니다
. 긍정적 단어가 아닙니다
. 그럼에도 대한민국은
복수에 열광 중입니다
.
중국의 노자는 이런 말을 했답니다. “누군가 너에게 해악을 끼치거든 앙갚음하려 들지 말고 강가에 고요히 앉아 강물을 바라봐라. 그럼 머지않아 그의 시체가 떠내려올 것이다”라고. ‘모든 것은 순리대로’를 강조한 노자답습니다. 노자가 지금 대한민국에 산다면 뭐라 할지 궁금해집니다. 그는 여전히 ‘앙갚음’보다 ‘순리’를 강조할 수 있을까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와 SBS 드라마 ‘모범택시’ 시즌2. 두 드라마의 공통점은 사적 복수를 다룬 단 점입니다. 복수란 개념은 선사시대부터 있었을 것입니다. 복수는 인간의 근본적 감정과도 연결된 행위이기에 복수의 역사와 인류의 역사는 같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합니다. 드라마 즉 콘텐츠가 소비하는 복수는 오랫동안 존재해 온 개념적 스토리의 오브제란 뜻입니다.
분명한 건 과거 시대의 복수와 현대 사회의 복수는 다른 결을 지닌단 겁니다. 기존 복수극은 이랬습니다. 선악이 존재하고 권선징악 흐름 속에 악은 벌을 받습니다. 홍길동전으로 가봅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홍길동은 도적떼 두목이 돼 조선팔도를 돌며 못된 벼슬아치들을 혼내 줍니다. 얼핏 히어로물 같지만 엄밀히 말하면 복수 장르입니다. 현실에선 엄두도 못 낼 아버지에 대한 심리적 복수를 양반이란 사회구조에 앙갚음으로 승화시킨 것이라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홍길동의 복수는 공적 형태를 띱니다. 자신을 위한 복수가 아닌 탐관 오리들에게 피해 입은 백성을 대신해 복수하는 형태 입니다. 조선 중기 사람들이 홍길동전에 열광했던 건 극중 복수가 공적 명분을 지녔기 때문일 것입니다. 만약 홍길동이 도적떼의 왕이 돼 아버지에게 복수하는 내용이었다면 호응을 얻었을까요.
2023년 대한민국을 강타한 현대의 복수극으로 가봅니다. 철저히 사적 복수에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명분이 있지만 사적 명분이고 사적 명분에 따라 법의 울타리를 넘어선 초법적 형태로 복수가 이뤄집니다. 공적 명분도 없고 복수의 과실을 따 먹는 이도 개인에 불과하지만 그런 사적 복수에 한반도가 들썩입니다.
중요한 건 복수란 콘텐츠 자체가 아닌 이렇게 변화하는 ‘복수의 영역’이 아닐까 싶습니다. 단순한 재미로 복수극을 바라볼 게 아니라 왜 이토록 ‘사적 복수’에 모두가 공감하고 열광하는지 그 이유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단 뜻입니다. 왜 개인이 초법적 형태의 복수를 감행하고 사람들은 그에 열광할까요. 이유는 단순할 듯 합니다. 법이 개인을 지키지 못한다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법이 지켜주지 못하면 개인이 개인을 지킬 수 밖에 없습니다.
엄연히 법과 정의가 존재하지만 재력과 권력에 의해 법이 농락당하기 일쑤입니다. 재력과 권력 없는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것이 비록 초법적 형태 일지라도) 사적으로 복수하는 길밖에 없는 사회가 이미 도래해 버린 건 아닌가 우려됩니다.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에선 사적 복수가 필요하지 않을 텐데 말입니다. 한때 그렇게 자주 들었던 공정과 상식,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묻고 싶습니다. 이것이 요즘 복수극을 바라보는 솔직한 저의 감상평입니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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