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쉽지 않은 한해, 겨울나기
2022-12-27 06:00:00 2022-12-27 12:01:40
한 해가 저물어 갈 때면 세무사 사무실은 분주해진다. 11월까지 장부기록을 바탕으로 사장님들의 소득세가 얼마쯤 될지 예상해본다. 세금이 많이 나올 것 같은 사장님에게 연락해서 챙기지 못한 비용 서류가 있으면 챙기고, 해의 경계에 있는 매출을 어떻게 처리할지 의논한다.
 
하지만 올해는 그 일이 생각보다 금방 끝났다. 버는 돈이 있어야 세금도 내는 것인데, 번 돈이 없으니 세금도 없게 됐다. 우선 전반적인 매출이 줄거나 제자리걸음이었다. 개인사업자 중에는 2021년에 사업이 괜찮아서 적극적으로 확장했던 곳도, 올해 생각만큼 성과가 안 나온 경우가 더러 있다. 조만간 지점을 정리한다고 연락이 올 것 같다. 둘째로, 각종 비용이 오르면서 남는 것이 없다. 안 오른 것이 없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이럴 때면 사장님들 입에서 자조의 농담이 나온다. '세금 잔뜩 내도 좋으니 실컷 벌어보고 싶다'고. 낼 세금이 없고, 자조가 나오기 시작하면 상황이 좋지 않다는 징조다. 우리나라에서 세무사만큼 전반적인 경기 변동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직업은 없을 것이다. 세무사가 느끼기에, 경기가 나빠지는 것이 피부에 와닿고 있다.
 
요식업의 경우, 물가가 너무 많이 올랐다. 식재료값 자체도 오른 데다 유통비용도 올랐다. 월세도 계속 오르고 있다. 인건비도 오르고, 배달 수수료도 올랐다. 일단 급한 불부터 끈다고 빌려쓴 대출 이자도 올랐다. 하지만 음식값은 쉽게 올릴 수가 없다. 소비자들이 주머니를 닫고 찾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자영업자 카페를 방문해보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모르겠다는 얘기 뿐이다.
 
상가 임대업자가 월세를 올려받았다고 넉넉한 형편이 아니다. 그들이라고 다 건물주 부자는 아니고, 은퇴한 직장인이 퇴직금을 털어넣고 대출을 일으켜 장만한 경우가 더 많다. 일자리가 없는 그들에게는 상가에서 나오는 월세가 노후자금의 전부다. 그런데 이자율이 전례없는 속도로 상승하면서, 월세를 받아도 이자를 내고 나면 남는 것이 별로 없는 상황이 되었다. 요즘은 월세로 한 달 생활하기가 빠듯하다는 분들이 많다.
 
공인중개사, 법무사 사무실도 상황이 좋지 않다. 부동산 매매가 전멸하다시피 했기 때문에, 지출은 그대로인데 매출이 급감했다. 손님이 없는 것을 노력으로 어떻게 할 수도 없다. 할 수 있는 것은 직원을 내보내는 것 밖에 없다. 가족이 도울 수 있으면 돕는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건강관리에 관심을 많이 갖고, SNS로 보여주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실내 체육업은 그럭저럭 수요가 있다. 하지만 경쟁이 너무 심한 것이 문제다. 허가를 받는 업종도 아니고 자격증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래서 필라테스 교습소나 크로스핏 교습소가 우후죽순으로 생기고 있어 거의 한 건물에 하나씩 있다시피 한다. 사시사철 할인 이벤트를 하고 전단지를 돌린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이다.
 
갤러리업도 어렵다. 미국에서 기준금리를 급격히 올리면서 부동산과 주식도 하락하는 모습이다. 하물며 환금성이 더 떨어지고 사치품에 더 가까운 미술품은 말할 것도 없다. 사람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면 제일 먼저 줄이는 것이 사치품이다. 갤러리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한 달에 한 작품을 파는 것도 쉽지 않은 시절이다. 당연히 작가들도 힘들어지고 있다.
 
세무사도 사장님들이 잘 돼야 함께 잘 될 수 있다. 이런 분위기라면 세무사에게도 어려움이 곧 찾아온다. 요즘 나도 책상에 앉아 겨울나기를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청약통장을 해지하고 높은 이자의 대출을 갚았다. 청약통장이 언젠가 요긴하게 쓰일 수 있다는 것도 알지만, 지금을 견디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가지고 있던 생명보험도 해지하기로 했다. 여태까지 불입한 금액이 아깝지만 지금은 먼 미래의 일을 걱정할 때가 아니다. 일단 견디고 나야 다음도 있다. 결심하고 나니 보험업에 종사하는 분들도 걱정이 됐다. 요즘 같은 시절에는 신규 계약은커녕 기존 고객이 해지하지 않도록 설득하는 것이 그들의 일이라고 한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먹을 것이 부족해지는 겨울이 오면 곰과 다람쥐는 겨울잠을 준비한다. 겨울이 오기 전에 먹이를 충분히 먹어두어 지방층을 쌓는다.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면 최소한의 필수적인 호흡과 심장박동 이외에는 모든 에너지 소비를 줄인다. 배변활동도 거의 하지 않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다들 내년은 쉽지 않은 한 해가 될 거라고 한다. 할 수 있는 일은 살아남는 것뿐이다. 겨울을 날 수 있도록 현금을 비축하고, 필수적인 지출 외에 자금 유출을 최소화해야 한다. 겨울을 잘 나는 자만이 봄을 맞이할 수 있다.

권민 미술전문 세무사(MK@mktax.co.kr)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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