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21세기형 얄타 체제라는 도전
2026-01-19 06:00:00 2026-01-19 06:00:00
1945년 얄타회담에서 미국·영국·소련은 독일 분할 점령, 폴란드 국경 조정, 동유럽 질서, 일본전 참전과 소련의 이권 회복 등 사실상 전후 유럽·동아시아 지도를 합의했다. 한반도 분단도 사실 이때 결정되었다. 동시에 이들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에 거부권을 부여하는 등 강대국 협조를 전제로 한 집단 안보 체제를 설계했고, 이것이 ‘얄타 체제’라 불리는 전후 국제질서의 제도적 골격이 되었다.
 
오늘 그린란드, 우크라이나, 대만을 둘러싼 미국·러시아·중국의 움직임은, 얄타 체제가 만든 틀 위에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그 틀을 부분적으로 해체하며 ‘UN 없는 얄타’를 실험하는 과정에 가깝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베네수엘라를 침공해 마두로를 납치하고, 이제는 덴마크령 그린란드를 “살 수도, 필요하다면 병합할 수도 있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장면은 그 전형이다. 그린란드는 1951년 미·덴마크 간 그린란드 방위 협정에 따라, 덴마크의 주권을 전제로 하면서도 미국이 NATO 방위 계획하에 방위 구역을 설치·운영할 수 있도록 허용된 공간이다. 툴레 공군기지(현 피투피크 우주기지)는 그 상징으로, 미국은 이곳에서 북극·대서양 요충지를 감시하며 미사일 방어, 조기 경보, 우주 작전을 수행해왔다. 그럼에도 트럼프 행정부는 덴마크라는 ‘착한 동맹’의 협력을 존중하기보다 그린란드를 “원래 미국이 가졌어야 할 전략 자산” 정도로 취급하며 외교·경제·군사적 병합 가능성을 동시에 열어둔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얄타협정 당시보다 더 노골적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가 보여준 건, 얄타 체제의 그림자를 노골적으로 재현하는 방식이다. 소련 해체 이후 잠시 숨었던 세력권 논리를 “러시아의 정당한 안보 이익”으로 재포장하며, 우크라이나를 자국 영향권에 두려는 서방의 시도를 무력으로 뒤집으려 한 것이다. 중국은 대만을 둘러싼 문제에서 “내정”과 “역사적 통일 과제”를 내세우며, 필요하면 무력 통일도 배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는다. 문제는 영토적 야심을 드러내는 미국과 러시아가 대만에 대한 중국의 야심을 비판하거나 저지할 수 있겠느냐는 거다.
 
이 세 강대국은 공히 첫째, 모두 자국 주변을 세력권으로 규정하고, 거기에 대한 외부 개입을 ‘안보 침해’로 본다. 둘째, 유엔과 국제법·국제규범은 전략상 활용할 수 있는 도구일 뿐, 스스로의 행동을 제약하는 상위 규범으로 보지 않는다. 얄타 체제가 ‘강대국의 세력권 합의 + UN·집단안보’라는 양면 구조였다면, 지금의 흐름은 ‘세력권만 있고 그에 상응하는 규범은 없는’ 반쪽짜리 얄타, 즉 19세기식 강대국 정치의 귀환이다.
 
지난 14일 덴마크 코펜하겐의 미국 대사관 앞에서 시위대가 “그린란드는 그린란드인의 것이다(Greenland belongs to the Greenlanders)”라는 구호를 외치며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런 흐름 속에서 한국 외교가 가져야 할 목표는 분명하다. 새 얄타가 성립되는 것을 막는 것만큼이나, 설령 강대국 간 빅딜의 유혹이 작동하더라도 한국이 그 주변부, 즉 ‘거래 대상’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예방 외교를 구상해야 한다. 이재명정부의 대주변국 외교는 존중받고 설득하는 중견국 품격을 기반으로 지역 질서에 무시되지 않을 영향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미·중 경쟁 속에서 한국은 “반(反) 얄타 연대”의 축이 되어야 한다. 대만 문제에서 한국이 군사개입을 전제로 한 입장을 취할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무력에 의한 현상 변경 반대, 국제법과 유엔 헌장 존중, 평화적 해결 원칙만큼은 일관되게 천명해야 한다. 중국과의 국빈 방문·경제 협력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중국식 세력권 논리에 동의했다는 신호로 읽히지 않도록 정교하게 관리해야 한다. 일본에 대해서도 환태평양경제공동체(CPTTP) 협상을 단기간 내에 완결하여 지역 협력의 범위와 강도를 높여야 한다.
 
국내 정치 차원에서 이재명정부는 외교안보 전략을 ‘진영의 언어’가 아니라 ‘질서의 언어’로 설명해야 한다. “친미냐 친중이냐”가 아니라, “19세기식 세력권 정치냐, 얄타 이후 축적된 규범 질서의 보완·업그레이드냐”의 선택이라는 점을 국민과 공유해야 한다. 그래야만 한국 사회가 강대국의 압박과 유혹 속에서도 일관된 기준을 유지할 수 있다.
 
김종대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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