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이나 사기만 있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믿었던 자식이나 친족이 더 위험합니다."
최근 국회에서 열린 '시니어 금융소비자 보호 포럼'에서 한 토론자가 성토한 말이다. 실제 주변을 둘러보니 가족, 지인 등에게 금전 착취를 당하는 고령자들이 상당수 존재했다.
금융서비스에 디지털 기술이 빠르게 접목되고 비대면 금융 업무가 늘어나면서 보이스피싱만 급증하는 것이 아니라 친족·지인에게 당하는 고령층 금융 피해도 늘고 있다. 노후자금을 털어간 사람이 알고 보니 자식, 친척, 지인 등 가까운 곳에 있었던 셈이다.
몸이 불편해 은행을 찾지 못하는 노인이 딸에게 통장 관리와 현금 인출을 맡겼다가 재산이 모두 딸의 통장으로 이체됐거나, 주택연금에 가입해 생활비를 마련하려던 노인이 주택을 상속받겠다는 아들의 강압에 못 이겨 생활비 부족에 시달리는 문제 등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었다.
이 같은 문제는 한국보다 인구 고령화가 앞서 진행된 일본에서도 심각한 사회 문제로 지목된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가족·친족·동거인 등에 의한 학대 신고는 매년 증가 추세이며, 2020년 기준 1만7281건이 실제 학대로 판단됐다. 이 가운데 14.6%가 경제적 학대이며, 인원수 기준으로는 2588명에 달했다. 학대자 분류별로는 아들이 39.9%로 가장 많았고, 이어서 남편 22.4%, 딸 17.8% 순이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65세 이상의 고령 인구는 18%에 달한데, 2025년에는 고령 인구가 20%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는 금융서비스의 전산화 수준도 높다.
하지만 디지털에 취약한 고령층의 금융 피해를 방지하는 제도적 틀은 미흡하다. 금융 착취는 회복이 어렵다는 특징이 있어 결과적으로 사전적 예방이 중요한데, 이를 방지할 제도가 미비한 것이다. 때문에 학계를 비롯한 소비자단체 등에서는 시니어 금융소비자를 위한 법 제정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에서는 이 같은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고령자 금융 착취를 민형사상의 문제로 취급하며 별도의 규제를 만들었다. 자율적이긴 하지만 금융 관계자에게 적용되는 강제적 신고 의무 등을 제안하는 가이드라인도 있다.
고령층의 경제적 학대, 금융 착취는 앞으로 우리 삶을 얼마나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을 지와 연결된다. 때문에 금융당국 및 금융기관에서의 적극적인 신고 의무 등을 반영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더불어 입법부의 법 제정이 시급하다. 언젠가 내 일이 될 지 모르기에 그저 바라만 볼 일이 아니다.
박진아 금융부 기자 toyouj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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