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근윤 기자] 가까스로 '이준석 늪'에서 벗어난 국민의힘이 정기국회 직후 차기 전당대회 절차에 돌입한다. 시점은 내년 1~2월이 유력하다. 전당대회가 사정권으로 들어오면서 당권주자들의 신경전도 가열되고 있다. 민심을 앞세운 유승민 전 의원에게 나경원 전 의원이 당심으로 연일 견제구를 날리는 가운데, '윤심'(윤석열 대통령 의중)이 누구를 향할지가 최대 관전 포인트로 부상했다. 윤핵관의 2선후퇴와 함께 안철수 의원의 공간이 크게 열렸다는 분석이 현재로서는 지배적이다.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이 국민의힘 서울시장 보궐선거 예비후보 시절인 지난해 2월25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희망22 사무실에서 유승민 전 의원을 만나 주먹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사진)
이준석 전 대표가 당의 비상대책위원회 출범에 반발해 제기한 3·4·5차 가처분신청이 지난 6일 법원으로부터 기각 및 각하 판결을 받으면서 정진석 비대위 체제의 효력이 인정됐다. 앞서 주호영 비대위의 좌초를 경험했던 터라 국민의힘으로선 걱정이 컸지만, 당의 '비상상황'을 명확히 규정한 당헌 96조 개정이 신의 한 수가 됐다. 자연스레 초점은 차기 지도부를 선출할 전당대회로 이동했다. "올해 안에 전대를 치르기는 물리적으로 힘들다"는 정진석 위원장의 언급과 정기국회 일정 등을 감안하면 당내에서는 내년 1~2월이 유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집권여당이 계속해서 비대위 체제에 의존한다는 것도 정치적으로는 부담이다. 당내에서도 조속한 당의 정상화를 바라는 목소리가 높다.
현재 당 안팎에서는 김기현 의원을 비록해 나경원 전 의원, 안철수 의원, 유승민 전 의원(가나다 순)의 당권 도전을 기정사실로 보는 분위기다. 5선의 조경태 의원도 출마로 마음이 기울었다. 4선의 윤상현 의원은 윤핵관의 빈 자리를 파고들 태세다. 이와 함께 권영세 통일부 장관과 원희룡 국토부 장관의 차출설도 흘러나온다. 권성동, 장제원 두 사람은 윤핵관 책임론으로 인해 사실상 출마가 좌절됐다.
전당대회가 사정권에 들어오면서 주자들의 신경전도 가열되는 모양새다. 유승민 전 의원은 지난 9일 페이스북에 국민의힘 차기 당대표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자신이 7주 연속 선두를 기록했다는 기사를 공유했다. 이에 나 전 의원은 하루 뒤인 10일 "이제 슬슬 당권경쟁이 시작되나 보다. 유승민 전 의원이 공유한 여론조사가 흥미롭다"면서도 "같은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층 7주 연속 1등은 나"라고 받아쳤다.
넥스트위크리서치가 KBC광주방송과 UPI뉴스 의뢰로 지난 4~5일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차기 당대표 적합도 조사에서 유 전 의원은 29.7%를 얻어 7주 연속 1위를 달렸다. 2위인 나경원 전 의원(12.2%)과는 두 배 넘는 격차를 보였다. 안철수 의원은 3위(9.8%)로 처졌다. 반면 보수층에서는 나 전 의원이 22.9%로, 유 전 의원(17.3%)보다 5.6%포인트 앞섰다.
이는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지난달 10일 발표된 코리아리서치·MBC 국민의힘 차기 당대표 선호도 조사에서 유 전 의원은 23.6%를 얻어 1위를 기록했다. 2위는 12.3%의 지지를 받은 안 의원이었다. 반면 조사 대상을 국민의힘 지지층으로 한정하면 나 전 의원이 24.7%를 획득해 1위로 올라섰다. 이어 안 의원(17.3%), 이준석 전 대표(11.7%), 주호영 의원(10.3%), 유 전 의원(8.4%) 순이었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
이번에 선출되는 당대표는 2024년 4월10일에 열리는 22대 총선을 진두지휘하게 된다. 결국 총선 공천권이 핵심으로, 앞서 이준석 전 대표와 윤핵관과의 혈투도 공천권을 둘러싼 당내 권력투쟁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 전 대표는 자신의 당대표 임기 내에 사천이 아닌 시스템공천으로 공천제도를 혁신할 계획이었으며, 권성동 의원은 원내대표 직후 당대표 직행, 장제원 의원은 실질적인 공천권을 행사하는 사무총장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게 당내 정설이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28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국민의힘 당헌 효력 정지 가처분 심문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사진=국회사진기자단)
상황은 달라졌다. '이준석 체제'의 등장은 탄핵과 분당으로 지리멸렬한 보수가 배경이었다. 당시 민심은 물론 당심 역시 변화를 갈망했기 때문에 전당대회에서 이준석 돌풍이 일 수 있었다. 그렇게 0선의 30대 젊은 정치인이 보수정당의 당대표로 등극했다. 반면 현재는 그토록 바라던 정권교체에 성공한 집권여당이다. 때문에 민심보다는 당심, 당심보다는 윤심에 좌우될 가능성 크다는 게 당 의원들의 일치된 전망이다. 앞서 경기지사 경선 역시 대선주자였던 유승민 전 의원을 초선의 김은혜 현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잡을 수 있었던 배경 역시 윤심이었다.
이에 윤심이 누구를 향할지가 최대 관건이 됐다. 당내 전망들을 종합하면, 현재로서는 안철수 의원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당의 기반이 취약한 안 의원으로서도 윤심의 지원은 필수적이다. 유 전 의원은 여당 내 야당으로 일찌감치 정치적 포지션을 잡았고, 나 전 의원은 이번 대통령 취임식에 초대받지도 못한 것을 들어 사실상 윤심과는 멀어져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기현 의원도 있지만, 앞선 세 명의 주자들에 비해 인지도가 약하다. 윤상현 의원은 이 빈 틈을 노린다. 일각에서는 권영세 통일부 장관, 원희룡 국토부 장관 등 제3의 인물 등장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변수는 윤 대통령의 낮은 국정 지지도 및 비윤계의 결집 여부다. 20~30%를 오가는 낮은 국정 지지도가 계속될 경우 총선 패배 두려움에 여권은 또 다시 변화를 택할 수도 있다. 앞서 원내대표 선거에서 이용호 의원이 친윤계가 결집한 주호영 의원을 대상으로 선전하며 파란을 일으킨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이에 전당대회 출마는 물론 차기 총선 출마도 사실상 사전봉쇄된 이 전 대표가 유 전 의원을 지원할지가 또 다른 관전 포인트로 부상했다. 물론 대통령의 힘이 가장 막강한 집권 초반기라는 점과 여전히 당의 주류는 친윤계라는 점에서, 본선에서 70%가 반영될 당심을 뒤집기는 어렵다는 관측도 설득력이 있다. 여기에다 역선택 방지 조항까지 곁들여질 경우 유 전 의원은 초반부터 무너질 수도 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 교수는 "여당에 윤심이 작용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며 "윤심이 어떻게 될 것인지 예측할 수 없지만 이 전 대표의 교훈이 있을 것이라 본다"고 진단했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이준석의 교훈을 강력한 친정체제 구축으로 구현할 것"으로 예측했다. 결국 전당대회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윤심'이다.
유근윤 기자 9nyo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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