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부터 큰 폭으로 개정 시행된 현행 도서정가제는 온·오프라인 서점의 도서 판매 시 가격 할인율을 10%로 제한한다. 간접 할인에 해당하는 마일리지(적립금) 5%를 포함해도 최대 15% 이내의 할인 한도를 준수해야 한다. 도서 할인 판매의 대명사인 대형 인터넷서점이나 전자상거래 업체들도 최대 할인 한도를 지켜야 한다. 도서정가제는 출판유통 소매시장에 참여하는 모든 판매자들이 속도 경쟁을 하면서도 엄수해야 할 일종의 도로교통법과 같은 역할을 한다.
그런데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시민의 독서 활동 촉진과 지역서점 지원을 연계시켜 도서구입비를 도서 정가 대비 최대 50%까지 지원하는 경우도 있다. 과도한 할인 경쟁에 따른 폐해를 줄이고, 책 생태계의 유통질서 확립과 다양성 유지를 위한 취지로 제정된 출판문화산업진흥법 도서정가제 규정이 무색할 지경이다.
대표적으로 대구광역시는 시민 독서 활동 장려 및 지역서점 활성화를 위해 지난 8월 말부터 9월 말 사이 서점별 지원금 소진 시점까지 지역서점 이용 시민의 도서구입비를 최대 50% 지원한다. 여기서 지역서점이란 체인서점 등을 제외한 지자체 인증 서점을 말한다. 만 13세 이상의 대구시민이라면 57곳의 인증 서점 이용 시 1인당 3만 원 한도 내에서 도서구입비의 절반액을 지원받을 수 있다. 즉 6만 원의 도서 구입을 하면 절반액을 지자체가 지원하는 방식이다. 모든 도서가 해당되는 것도 아니다. 학습참고서나 문제집, 취업 및 자격증 관련서, 유아 전집, 종교 경전, 사전, 잡지, 외국 도서, 학습만화 이외의 만화책, 컬러링북 등은 제외된다. 일반 단행본 구입을 지원하는 셈이다. 엄격히 지켜질 가능성은 낮지만, 1년간 중고책으로 판매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방침도 있다.
지역화폐 ‘온통대전’으로 이름난 대전광역시의 경우도 눈길을 끈다. 올해 상반기 서점 이용자들에게 3개월간 20%의 캐시백(1인당 월 7만 원 이내) 혜택을 제공한 데 이어, 하반기는 8월 19일부터 예산 소진 시까지 20%의 캐시백을 지원한다. 하지만 지난 지방선거에서 새로 선출된 대전시장이 내년부터 온통대전의 폐지 의향을 밝힌 이후 ‘계속 유지’ 의견이 팽팽히 맞선 상황이다. 20% 캐시백은 사실상 20% 할인 효과를 내는 것이어서 인터넷서점의 통상적인 할인율을 넘는 수준이다. 할인으로는 인터넷서점에 당해낼 수 없었던 지역서점이 당당히 가격 경쟁에서 이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외에도 전라남도 순천시는 ‘청년 꿈 찾기 도서 지원’ 사업을 시행하여 도서관 회원증을 가진 만 19~39세 청년의 도서구입비 50%를 지원한다. 1인당 최대 10만 원까지 쓸 수 있는데, 지역서점에서 반값에 구매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격 경쟁력이 월등하다. 당연히 시민과 지역서점에게 인기 최고의 정책이다.
이처럼 지자체의 시민 도서구입비 지원은 책값 지출이 부담인 지역 주민의 부담을 덜고 지역서점을 살린다는 점에서 일거양득이다. 책을 매개로 지역의 문화적 나이테를 키우는 중요한 사업이다. 그런데 순수한 도서구입비 지원 정책이 아닌 할인형 지원 정책은 현행 도서정가제의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10% 가격 할인 한도를 규정한 현행 법제는 10% 할인을 구조화시켰다. 출판사들은 이러한 출판시장에서 할인율을 미리 반영한 가격을 붙일 수밖에 없다. 출판사의 의도와 무관하게 이는 거품 가격이 된다. 현행 도서정가제는 책 정가를 10% 높여 책정하도록 구조화하고 10% 할인 판매하는 시늉을 한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독자 기만 구조에 불과하다. 지역서점만 희생양이 되었다. 처음부터 할인율을 불허했다면 생겨나지 않았을 문제다. 공급률(출판사와 유통사의 도서 정가 대비 소매서점 출고가격 비율) 등의 문제로 인해 10% 가격 할인을 하기 어려운 지역서점을 지원하여 지역경제와 지역문화를 살리고, 시민의 독서 생활화를 기하고자 하는 지자체의 노력은 중요하다. 그렇지만 현행 도서정가제로 생긴 문제를 지자체 예산으로 메꾸는 방식은 불안정하고 지속가능성도 낮다. 도서정가제 개선이야말로 거품 가격을 없애고 온·오프라인 서점의 균형 발전을 위한 지름길이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출판평론가(bookclub21@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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