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도 대출 절벽 현상은 심화될 조짐이다. 한국은행이 추가적인 금리 인상을 예고한 가운데, 금융당국도 가계대출 관리 강화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다만 중·저신용자나 저소득층 등 대출 실수요자에 대한 대출 문턱은 다소 낮춰주기로 했다. 정부의 과도한 대출 옥죄기 정책으로 서민 실수요자만 피해를 볼 수 있다는 목소리가 컸던 영향이다.
정부의 정책 방향에 은행들도 적극 호응하는 모양새다. 인터넷전문은행들이 중·저신용자 대출 혜택을 확대하고 있고 시중은행들도 중·저신용자에 대한 대출을 대폭 늘리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고신용자다. 정부의 대출 지원 정책이 중·저신용자와 저소득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상대적으로 고신용자들은 지원 범위에서 벗어나 있다. 금융당국은 신용평가사 신용점수 900점을 초과하는 고신용자들에 대해선 대출 제한을 보다 엄격히 적용할 것으로 보인다. 신용도가 높다는 이유로 대출 한도와 금리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실제 대출 창구 현장에선 우려했던 일이 현실화 하고 있다. 신용도가 높다는 이유로 대출 신청 금액에 훨씬 못 미치는 액수가 대출 금액으로 책정되는가 하면, 아예 대출 자체가 거부되는 일도 왕왕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대출 상환 능력이 있는 고신용자가 중·저신용자보다 대출이 덜 나온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기본적인 소득과 상환 능력이 있음에도 정부의 대출 정책으로 인해 원하는 만큼의 대출을 받지 못하는 것은 자유시장경제의 원리를 역행하는 일이다. 더 나아가 정부가 고신용자들에게 대출 역차별을 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다.
지난 21일 열린 정은보 금융감독원장 송년 기자간담회에서도 이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내년 대출 규제를 중·저신용자 등에 대해선 일부 예외를 두겠다고 언급했을 뿐 고신용자를 배려하는 정책 지원은 별다른 설명이 없었다.
금융당국이 정한 내년 가계부채 증가율 목표치는 4~5%대다. 이는 올해 목표치보다 강화된 수치다. 여기에 차주별 DSR 2·3단계 규제가 적용되고 전세대출도 대출 총량 관리에 포함된다. 대출 시장이 올해보다 내년에 더 꽁꽁 얼어 붙을 것이란게 자명한 셈이다.
정부의 정책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일방적으로 고신용자들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 더군다나 적절한 지원 방안도 없이 차별적으로 규제를 한다면 이는 금융 형평성에 맞지 않다. 고신용자들도 납득할 만한 지원 정책이 나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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