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고뇌하던 질풍노도의 시기, 청춘과 인간 내면의 고찰을 일깨워준 저서가 있다. 시계공장에서 시계 톱니바퀴만 닦던 어느 견습공 청년의 이야기. 독일계 스위스인 소설가이자 시인인 ‘헤르만 헤세’는 자신의 꿈에 한 발짝 다가서기 위해 대학 인근의 서점으로 일자리를 옮기곤 문학에 대한 열정을 키웠다. 1946년 ‘유리알 유희’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지만, ‘데미안’은 수십 년이 흘렀어도 잊을 수 없는 핫한 고전이다.
“나는 그저 내속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삶을 살고자 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것이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혼돈의 내면에서 무언가를 찾고 싶던 청춘의 열망을 데미안의 첫 구절이 말해주던 울림을 기억한다.
고뇌하던 성장통을 늘 자신에게 끊임없이 되묻고, 답을 찾지 못한 내면의 양면성을 대변하던 반항의 첫 단추이기도 했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 무엇을 해야 할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나란 존재와의 접점을 고민하던 가치관의 정립은 ‘꿈’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까까머리 세대에게 어른들은 즐겨 묻던 물음이 있다. “꿈이 뭐니, 커서 뭐가 될래?” 간혹 인사치레 같은 물음이나 진로에 대한 의사결정 능력을 함양하기 위한 풍토는 20세기 산업사회의 단골메뉴였다.
잠자는 동안의 정신 현상인 ‘꿈’은 장래 희망을 뜻하는 말로도 쓰인다. 장래 희망은 ‘일’과도 무관치 않다. 인류는 수렵과 채집활동을 하면서 일을 통해 진화해왔다. 특히 일자리는 생계를 꾸려 나갈 수 있는 수단의 직업이다.
어린 시절의 꿈을 떠올려보면 대다수 부모가 정해준 직업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변호사, 의사, 검사, 판사 등 개천에서 용 난다는 사자 직업은 물론 대통령이라고 웅비를 펼칠 태세처럼 자신의 꿈을 웅변하곤 했다.
하지만 오늘날 학생들에게 '커서 뭐가 될 거니'라고 묻는 것조차 부끄러운 시대다. 일자리가 사라지는 불안감은 미래 세대가 짊어질 고통이기 때문이다. 깬 세대가 건넨 꿈이라는 물음에 직업군이 아닌 "일자리"라고 말하는 요즘 세대의 답변은 시사하는 바가 컸다.
‘취업자’와는 다른 개념인 ‘2020년 일자리행정통계’를 보면, 사회보험이 보장된 양질의 일자리는 2472만개에 달한다. 이는 감염병 창궐에도 전년보다 71만개 증가한 규모로 '고무적'이다.
더욱이 한국판 뉴딜과 벤처 효과로 볼 수 있는 영리기업인 대기업, 중소기업 일자리가 각각 6만개, 45만개 늘어난 점은 코로나 악재에도 찬사를 받을 만한 통계치다. 민간일자리중심으로 고용이 개선되고 있는 점을 방증한다.
그럼에도 뒷맛은 개운치 않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노후 불안감, 고용불안 등 사회적 불안 요소에 내몰린 산물로도 표상할 수 있다. 주중 직장생활 후 주말 투잡을 뛰는 사람들이 늘어난 요인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년 정부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어려움을 겪는 청년 중심의 고용 회복과 취약계층 지원을 위한 직접일자리 105만개 창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위기 이전 수준의 ‘완전한 회복’을 위해 넘어야할 파고가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소위 '낀 세대'가 꼰대 같은 말을 한다면 꿈이 실종된 사회 속에 모두가 똑같은 세계만 꿈꾸지 않길 바랄 뿐이다. 데미안의 구절처럼 성인이 되서도 타의든 자의든 그 안에 갇혀 있는 이들도 있다. 그 누구도 완전한 어른이 될 수는 없겠지만, 어른이 되기 위한 투쟁의 첫 단추는 일단 '나'를 둘러싸고 있는 알을 깨고 나오는 일이다.
이규하 경제부장 jud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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