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란 무엇인가. '국가'라는 단어는 우리가 가장 많이 쓰는 말 중 하나다. 그런데 정작 국가를 정의하는 건 쉽지 않다. "국가가 말이야, 제대로 하는 게 없어"라거나 "배구 여제 김연경이 국가대표에서 은퇴한다"라고 할 때의 국가는 모두 똑같은 단어지만 쓰임새가 미묘하게 다르다. 국가는 사전적으로는 '일정한 영토와 거기에 사는 사람들로 구성되고, 주권에 의한 하나의 통치 조직을 가지고 있는 사회집단'이라고 정의된다. 하지만 국가라는 단어의 쓰임이 다르고, 의미를 하나로 통일하기 어려운 건 사람마다 생각하는 국가의 개념이 '제각각'이어서다.
국가에 대한 개념이 제각각인 건 국가를 보는 시각, 국가와 권력의 관계, 국가가 국민에게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 차이다.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들이 온갖 통치론을 꺼낸 건 당대 혼란한 사회질서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였다. '역사의 원동력이란 무엇인가'로 영웅주의와 사회결정론이 부닥친 건 국가와 공동체를 어떻게 운영할 것이냐 하는 고민에서 비롯됐다.
이런 맥락에서 역대 선거, 특히 대통령선거에선 '국가란 무엇인가'와 '어떤 국가비전을 제시할 것인가'가 가장 첨예한 쟁점 중 하나였다. 코로나19 장기화와 서민경제의 침체, 부동산가격 폭등에 따른 민심이반이 심한 탓일까. 대선을 200일 정도 남겨둔 시점에서 여야 주자들도 새 국가를 만들겠다며 국가론을 꺼내 들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기득권과의 한판 승부'를 강조하며 대전환기의 공정성장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큰 정부론를 내걸었다. 이낙연 의원도 '내 삶을 지켜주는 나라'를 주창,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시사했다. 반면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국민의 삶을 왜 정부가 책임지느냐"라며 최소개입주의를 공언하는 듯한 모습이다. 여기에 주 120시간 노동, 부정식품 허용 발언을 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자유방임주의를 역설하는 모양새다. 정당 이름부터 '국가혁명'을 표방한 허경영 국가혁명당 명예대표는 국가주의적 공약을 내놓을 기세다.
하지만 대선 주자들의 국가론이 한편으로는 공허한 목소리로 여겨진다. 어디 한국만 그럴까. 해외 정치지도자들과 유명 석학들이 내세운 이론이 엄청나게 많았지만, 세계 어디에서도 그 이론과 정책으로 국민이 행복해졌다는 이야기를 찾는 건 쉽지 않다. 국민은 양식이 풍족하고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며 정책에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국가를 원한다. 정의가 바로 서고 기회가 균등하며 현안에 대해 실질적인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는 국가를 바란다. 대선 주자들의 국가론을 듣다 보면 무엇인가를 간과한 느낌이 드는 것도 이 지점이다.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 가운데 현대까지 명맥을 이으며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유가다. 유학과 유교로까지 발전했다. 하지만 유가가 2000년 넘는 역사를 지배하는 동안 중국이건 조선이건 어디에서도 백성이 한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다는 건 역설적이다. 저마다 내세운 공정과 자유가 권력을 갖기 위한 공정 프레임, 권력을 찾기 위한 자유 프레임은 아닐지 고민할 시점이다. 국민은 선거 때 묻는다, "국가란 무엇이냐"고.
최병호 정치부 기자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