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광연 기자]
삼성전자(005930)가 미국에 역대 해외 반도체 단일 투자로는 최대 규모인 170억달러(약 19조2000억원)를 내놓으며 '미국 반도체 동맹'에 정식으로 합류했다. 잃어버린 세계 반도체 패권을 되찾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치고 있는 바이든 정부와 앞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상호 이익이 될 협력을 지속할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22일(한국시간)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이 참석한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서 삼성전자는 미국 내 신규 파운드리 공장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구체적인 내용까지는 언급하지 않았으나 현지 외신들은 삼성전자 텍사스 주 오스틴 파운드리 공장의 추가 투자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우리 정부는 미국에 삼성전자 등 국내 기업들이 세금 공제, 안정적인 전기·수도 공급 지원 등을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한국기업이 건실한 투자 계획을 밝힌 만큼 미국이 적극적으로 나서 규제를 완화해달라는 메시지다.
삼성의 이번 투자 발표는 그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자국 반도체 노선 구축을 외쳤던 미국 정부에 호재라 할 수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기술력을 가진 삼성의 합류는 그 자체만으로도 미국에 큰 힘이 된다. 삼성으로서도 장기적으로 미국과 반도체 동맹을 이어갈 끈을 구축했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운 성과를 얻었다. 우리 정부가 요구한 대로 적극적인 세제 완화 정책이 이어진다면 기존 대비 비용까지 절감하는 효과를 얻게 된다.
바이든 정부는 지난달과 한미정상회담 직전인 21일 잇따라 삼성을 반도체 관련 회의에 초대하며 자국 노선 합류를 권했다. 회의 성격은 차랑용 반도체 품귀 현상 등 글로벌 이슈에 대응하자는 의미였으나 실상 자국 반도체 동맹에 합류해달라는 메시지였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삼성전자는 미국의 암묵적 요청에 확실한 투자로 화답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한미정상회담 이후 공동기자회견에서 "투자를 발표한 한국 기업에 감사하다. 고맙다"고 연신 손뼉을 쳤다. 또 "삼성, 현대, SK, LG 경영자들은 일어나달라"고 요청했고, 경영자들이 일어나자 참석자들은 일제히 박수를 보냈다.
미국을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오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미 상무부에서 열린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 행사에 참석해 있다. 사진/뉴시스
올해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미국은 반도체를 자국에서 생산하게 하겠다는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3월 "반도체는 21세기 편자의 못"이라며 반도체 칩 공급 실태에 대해 검토를 지시하는 등 아시아에 내준 반도체 패권을 되찾아오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치고 있다.
특히 정치 동맹국들을 경제 전면에 내세워 중국을 견제하고 자신들의 방어막으로 활용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달 삼성전자 앞에서 웨이퍼를 들고 반도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등 직접 손으로 중국을 때렸던 트럼프 정부 때보다 '경제 동맹'이 느끼는 부담감을 커졌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업계 관계자는 "자신들이 알아서 행동했던 트럼프와 달리 바이든 정부는 스스로 움직이지 않고 동맹국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가 발표한 이번 투자 규모는 이전부터 업계와 외신 등에서 꾸준히 언급됐던 액수인 만큼 앞으로 미국이 추가 투자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삼성의 파운드리 경쟁자 TSMC가 기존 애리조나 주 피닉스에 120억달러(약 13조5000억원)를 들여 5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공정 생산라인을 늘리려던 계획에서 더 나아가 3년간 1000억달러(약 112조8000억원)를 들여 파운드리 공장 5곳을 추가로 건설하는 내용을 발표한 것은 삼성에 부담이다.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앞으로 "자국 투자를 확대하라"는 미국의 메시지가 계속 이어진다면 삼성으로서도 반도체 투자 확대나 현지 기업 인수합병(M&A) 등 추가 '선물 보따리'를 제시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김광연 기자 fun350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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