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대중음악신의 ‘찬란한 광휘’를 위해 한결같이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TV, 차트를 가득 메우는 음악 포화에 그들은 묻혀지고, 사라진다. ‘죽어버린 밴드의 시대’라는 한 록 밴드 보컬의 넋두리처럼, 오늘날 한국 음악계는 실험성과 다양성이 소멸해 버린 지 오래다. ‘권익도의 밴드유랑’ 코너에서는 이런 슬픈 상황에서도 ‘밝게 빛나는’ 뮤지션들을 유랑자의 마음으로 산책하듯 살펴본다. (편집자 주)
검정치마(본명 조휴일)가 홈메이드 EP 음반 ‘Good Luck to you, Girl Scout!’를 내놨다. 지난해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모던록 음반상을 수상한 정규작 ‘Thirsty’ 이후 약 2년 만의 외출. 홈메이드 제작 방식은 데모 앨범 ‘My feet don't touch the ground(2009, 이하 My feet don’t touch...)’ 이후 12년 만이다.
대부분의 기존 정규작들과 가장 구별되는 지점은 미니멀리즘한 악곡 구성이다. 단출한 기타 튕김과 간결한 신디사이저의 타건, 침전의 늪으로 빠져들게 하는 투박한 로파이(low-fi) 질감은 찰나에 공기 흐름을 조용하고 느리게 바꿔 놓는다.
검정치마. 사진/비스포크
-그간 검정치마의 음악은 단일한 장르의 어법으로는 묶을 수 없었다고 봅니다. 포스트 펑크부터 로파이, 컨트리, 팝적 감성 등이 뒤섞여있다고 보는데요. 그 속에서도 검정치마 음악을 특별하게 만들어 준 것은 귀에 확확 감기는, 직선적 멜로디, 난파할 듯 여린 서정의 이야기, 자유 분방한 뉴욕필이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이러한 의견에 대해 정작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동의하지 않으시면 본인만의 음악스타일을 차별화시켜 주는 무엇이 따로 있다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아티스트를 만드는 건 결국엔 출신 배경, 그리고 듣고 자라온 음악들이겠죠. 검정치마로 활동하면서 정말 많은 뮤지션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요, 다른건 잘 모르겠고 음악을 학교에서 전문적으로 배운 사람들이랑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확실히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처음 데뷔했을 때 인디신에는 서울대 출신 밴드들이 많았는데, 그래서였는지 홍보자료를 작성할 때 전 소속사 사장이 저한테 대학을 어디 다녔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버클리 잠깐 다니다 중퇴했다고 하자마자 곧바로 홍보자료에 버클리 출신으로 나가는 걸보고 기겁을 했었죠.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저는 등록금만 냈지 학교는 일절 안 나갔어요. 재미도 없었지만 첫날부터 도저히 수업을 따라갈 수 없었거든요. 출석이 없어서 All F 를 두 번이나 맞았는데 퇴학은 커녕, 학사경고도 안 주고, 애초에 저를 입학시켰다는 자체부터가 돈 독 오른 학교 아닙니까? 그래서 결론은 당신이 지금 실용음악 전공이라면 당장 때려치우고 등록금으로 당신의 첫 번째 앨범을 제작하세요 (혹은 현재 버클리에 재학 중이라면 등록금으로 아파트와 차를 사고 남은 돈으로 첫 번째 앨범을 제작하세요). 버클리극혐, 그리고 조휴일 고졸.
-코로나에 의한 격리로 헤어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셨습니다. 정작 본인은 코로나 팬데믹 상황으로 음악작업이나 생활에 영향을 받진 않으셨는지요.
오히려 딴 생각 안 하고 일에만 집중할 수 있었어요. 제 인생 통틀어서 작년에 제일 열심히 작업했습니다.
-2004년 검정치마를 결성하고 데뷔한지, 이제 17년 정도가 지난 것으로 압니다. 작곡속도라든지, 사운드메이킹이라든지, 가사를 쓰는 것이라든지, 데뷔 때에 비해 달라진 점들이 있나요.
데뷔 17년이라고 하면 뭔가 헌정 앨범을 받아야 될 것 같잖아요. 인터넷에는 틀린정보가 많아요. 검정치마로 2008년 11월에 데뷔했습니다. 그때와 지금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제는 노래를 만들 때 크게 고민하지 않아요. 예전에는 노래 하나를 붙잡고 '어떻게 하면 좀 더 귀에 오래 맴돌게 만들 수 있을까' 같은 고민을 했었는데, 갈수록 그런 것들이 없어져 가요. 그냥 기타를 잡고 처음 나오는 코드랑, 멜로디, 가사가 그 노래의 시작과 끝인 것 같아요. 작법이 게을러졌다기보다는, 이제는 대충 눈 대중으로 소금 한 움큼 잡고 뿌려도 제가 원하는 간이 정확하게 나오는 것처럼, 녹음은 여전히 노동이지만, 창작 자체는 훨씬 쉬워졌어요.
저번 앨범, Thirsty를 만들던 어느 날 너무 지치고, 답답한 마음에 ‘한 곡 정도는 그냥 아무렇게나 만들어보고 싶다. 그러면 내가 앨범에 가지고 있는 강박이나 부담감을 좀 덜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어요. 그래서 5분 만에 대충 만들고 녹음해서 발매한 노래가 Lester Burnham인데, 당시 저는 그게 굉장히 획기적인 자가 치료가 될 거라고 믿었어요. 마치 결벽증 환자가 용기를 내서 공중화장실에 들어가는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사람들이 그 노래를 좋아해 준다는 사실에도 제 맘이 편해지는 건 하나도 없더라고요. 이번 EP도 비슷한 시도에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규 앨범 작업을 하면서 혼자 걷잡을 수 없이 들떠 있었는데, 너무 서두르는 것 같은 기분도 들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몸을 혹사 시킬까봐 두려웠어요. 다행히도 이번 음반이 저에게 심적, 그리고 조금의 시간적 여유를 벌어준것 같아요.
-음악은 검정치마에게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앞으로는 어떤 뮤지션이 되고 싶은지요. (3집의 파트3는 언제 나올 것인지도 여쭙습니다.)
예전에 정말 섣부르게 검정치마는 곡 ‘everything’으로 기억됐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었는데, 그 말 다 취소할게요. 다음 정규는 제가 평생을 기다려 온 앨범이에요. ‘201’이나 ‘Team Baby’의 시즌 2가 아닌, 온전히 새로운 이야기들이기도 하고요. 어쩌다 보니 저도 이걸 파트 3라고 부르고 있긴 한데, 음악적으로나 주제에서도 전혀 상관없는 앨범이에요. 단지 ‘Team Baby’랑 ‘Thirsty’를 만드는 도중에 시작한 앨범이기 때문에 파트 3라고 부를 뿐, 사실 파트3 같은건 없어요. 이미 1, 2부로 완벽하거든요. 대신 새 앨범은 20곡 더블 앨범이에요. (번복하면 피자 100개 쏩니다). 이번 여름에는 최대한 음악 하고 상관없는 일을 하면서시간을 보내고, 가을쯤 녹음을 시작할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이번 앨범을 특정 ‘공간’(여행지도 좋고 추상적인 공간으로 설명해주셔도 좋습니다.)에 빗댄 다면, 듣는 사람들에게 어떤 공간이면 좋을지, 그리고 그 이유를 설명해 본다면 무엇일까요.
전 이 앨범이 우울하다는 생각이 안들어요. 화창한 주말 오후, 야외 테이블이 있는 카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커피를 많이 마시기 시작해서 그런지 카페라는 공간이 익숙해 졌거든요. 물론 저는 카페에 앉아 있는거 싫어해요. 무조건 테이크 아웃입니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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